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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를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발언자의 신원을 표기하기 위해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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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 ch.2 일상편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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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개 (犬)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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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숨 쉬잖아."




새하얀 머릿칼 속에 파묻혀있던 카미나기의 낯색은 새파랬다. 죽었거나 곧 죽는다고 해도 믿을 법한 색이었다.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었지만 얼굴과 무릎의 가벼운 멍 외에 외상이나 옷이 찢어진 곳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피를 듬뿍 먹은 걸레를 떨어뜨리면서 묻은 모양.

숨은 쉰다. 죽지 않았다.

이 녀석은 하루히나 멧돼지처럼은 되지 않는다. 아직은.



……흐흐흥.

그렇다면 또 얘기가 다르지.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고 여전히 성대하게 널브러진 꼴의 카미나기를 내려다보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공공장소에서 아주 팔자 좋게 늘어져있는 백발의 미소녀… 아니, 백발 추녀의 눈부신 자태가 눈에 들어왔다.

얇지만 너무 말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쭉 빠진 다리, 아슬아슬한 선까지 말려올라간 주름진 치마자락, 부각되진 않지만 꽤 건방진 볼륨감이 느껴지는 바스트, 평소와는 달리 바보처럼 벌어진 붉은 입술….

'이걸 그냥 넘어가면 오히려 카미나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라고 머릿속의 작은 꼬마 악마가 속삭였다.

보통은 여기서 꼬마 천사가 튀어나와 의견 대립을 펼치는 게 클리셰겠지만 틀렸다.

'나'는 뱃속에 천사 따위 키우지 않는다. 대신 두 번째 꼬마 악마가 '덮치는 건 좀 에바고 좀 주물거리기만 하자'고 소심한 피드백을 했을 뿐이다.

좋아. 여기서 후퇴하면 남자가 아니지.

사나이 카라스야마 류이치. 독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겠노라.




"흐흐흥. 잘 먹겠습니ㄷ… 크악!"

카미나기 한나: "…부탁이니 제발 자살하세요."



봉긋한 가슴에 손끝이 닿을랑 말랑 했던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카미나기의 구두 굽이 내 미간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천지가 개벽하는 고통에 '나'는 옷으로 카펫을 청소하듯 복도를 뒹굴었다. 적어도 목을 매달았을 때보단 더 아팠다.

쳇. 그럼 그렇지. 단간론파의 19금 딱지는 선정성 때문에 붙은 건 아니니까. 다음 기회를 노릴 수 밖에.

기린 못지않은 발길질로 변태를 쫓아낸 카미나기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아앗!" 하며 육성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여전히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카미나기 한나: "윽, 머리가… 아파요…!"

"내 머리보다 아프겠냐…. 젠장. 흰토끼.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이런 데 나자빠져 있어?"

카미나기 한나: "…그… 그게…. 분…명…. 누군가를 봤는데…. 윽!"

"봤다고? 누굴?"

카미나기 한나: "그, 그게…. 그게… 그…."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 카미나기의 행색은 전혀 카미나기답지 않았다.

말을 더듬고 잔뜩 초조해하며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낯설어도 너무 낯설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이유는 곧바로 나타났다.


카미나기 한나: "기억이... 나질 않아요…."

"…뭐?"

카미나기 한나: "느낌이… 이상해요. 뭔가... 뇌 한 구석이 통째로 뜯겨나간 듯한… 기억이… 기억이 안 나…. 어째서? 이… 이게 무슨 일…?"

"…이봐. 좀 진정하고 찬찬히 생각해봐. '완전기억능력'이 네 특기잖아. 네 자료를 봐서 알고 있다고. 기억이 안 난다니, 그게 말이 돼?"


카미나기는 시선울 푹 떨어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자포자기. 그 네 글자가 딱 어울리는 꼴이었다.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 카미나기 한나.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눈앞을 스쳐지나간 광경은 사진첩에 담아둔 것처럼 언제든 머릿속에 재현해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

그런 그녀가 '기억을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토끼가 풀을 못 삼키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기이하게 보였다.


다소 보채긴 했지만 흰토끼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일반인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기억이 안 난다'는 개념 자체가 그녀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리라.

리모컨을 잃어버렸을 때나 장보기를 깜빡했을 때의 그 막연한 당혹감을 이 여자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했다는 것이다. 오갈 곳 없는 불안함. 무너진 자부심.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의 존재가치'에 집착하는 카미나기로서는 그 강인한 정신력에 흠집이 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고개를 떨군 채로 어떻게든 생각을 쥐어짜내려 노력하는 카미나기의 입에서 몇 마디 말들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카미나기 한나: "…분명…. 걸레를 빨러 가던 도중…. 남자와 여자를 본 것 같은 기분…. 얼굴과 대화내용이 전혀…."

"…쯧. 그만하면 됐어.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걸레는 그냥 샤워실에서 빨자고. 영 내키지 않으면 내 쪽 샤워실을 쓰면 되잖아."

카미나기 한나: "아녜요….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이봐. 자각을 못하나본데, 그새 살해당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꼴이었거든? 적당히 말로 할 때 들어먹는 게 어때? 두들겨맞고 끌려가기 싫으면."

카미나기 한나: "……손…전등?"

"…하?"

카미나기 한나: "손전등… 그래, 손전등이에요! 뚜렷하게 기억나요! 핑크색 손전등을 제게 비췄다고요!
그 손전등…을? …아? 어? 어……. 아?"

"손전등이라니, 그게 대체 뭔…? 어이? 흰토끼! 어이!"



'핑크색 손전등'이라는 영문을 모를 말을 마지막으로, 흰토끼는 전원이 꺼진 토끼 인형처럼 빙그르 초점을 잃더니 이내 풀썩 쓰러져버렸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나'에겐 세 가지 어려운 숙제가 떠넘겨진 셈이었다.

하나는 카미나기가 말한 남녀와 손전등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

둘은 50kg짜리 짐짝을 개인실까지 안전하게 옮겨다놓는 것(그리고 그동안 짐짝에 손대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못 다한 개인실 청소를 마무리짓는 것.

아, 젠장. 공짜를 바라면 대머리가 된다더니, 딱 이런 꼴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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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게임 5일차,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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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델 만큼 기세 높은 고열에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흰토끼는 날이 밝아서야 겨우 침대 시트에 부비적거리며 눈을 떴다.

보통이라고는 말 할 수 없는 심각한 증세였지만 내게 카미나기의 병간호를 할 만큼의 의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카미나기도 밤새 자신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나'에게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으니 그걸로 된 문제다.

혹시나 했지만 카미나기는 지난 새벽 복도에서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손전등을 언급한 부분까지 깔끔하게 잊어버려, 오히려 무슨 수면제 같은 걸 탄 게 아니냐고 '나'를 추궁하기까지 했다.

젠장, 이럴 걸 알았다면 가슴 정도는 만져보는 건데.


카미나기 한나: "흠…. 이상하네요. 제가 기억을 못 하는 일이 다 있다니. 저는 눈으로 본 것들은 전부 머릿속에 영상 필름처럼 저장해두고 다니거든요. 역시 카라스 씨의 거짓말이 아닌지?"

"오히려 깔끔하게 필름이 잘려나가서 일반적인 '기억이 안 난다'라는 감각과는 다른 걸지도 모르지. 적어도 몸 상태가 엉망인건 사실이잖아. 그것도 내가 한 짓인가?"

카미나기 한나: "아닌 게 아니라…. 흐음. 어디 거짓말쟁이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열이 섭씨 39도든 몇 도든 간에 카미나기는 평온한 표정으로 독설을 뱉어냈다. 대상이 '나'라면 죄책감 따윈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카미나기 한나: "일단 믿도록 하죠. 파트너니까."

"하이고. 감사하기도 해라."

카미나기 한나: "그건 그렇고, 카라스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목격한 그 두 남녀는 역시…. '흑막'일까요?"


카미나기가 갑작스레 진지한 표정으로 깊숙한 이야기를 꺼냈다.

흑막. '나'와 카미나기의 공동의 목표물.

전통대로라면 이 가상현실 내부에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근거 없이 확신했던 그 가설 속의 존재가, 이렇게나 빨리 그 모습을 드러낸 걸까?


카미나기 한나: "핑크색 손전등으로 기억을 지우고 다니는 괴한 남녀라…. 심상찮게 들리잖아요. 기억을 지운 방법은 확실하지 않긴 하지만…. 애초에 시청자 대표를 제외한 모두는 이미 참가 이전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지워졌으니, 시스템을 장악한 흑막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섣불리 판단하긴 일러. 네 증언이 제정신으로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고. 흑막이란 놈들이 그렇게 눈에 띄기 쉬운 곳에서 밀회를 가졌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워."

카미나기 한나: "흐음. 생각보다 냉정하시네요."


그렇게 말하며 카미나기는 이마의 식은땀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냉정하다기보단,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너무 앞서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을 뿐이다.

아직 시간은 많다. 섣부른 판단으로 흑막 사냥을 그르칠 순 없는 노릇이다.

여유롭게. 머리를 식히는 거다.

'나'는 정의를 추구하는 용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개 범죄자일 뿐.

가능한 냉정하게, 가능한 비겁하게, 가능한 은밀하게.

그게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다.


카미나기 한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오랜 안 걸릴 거에요."


카미나기가 도무지 환자라고는 보기 힘든 로봇 같은 동작으로 외출 준비를 마친 뒤 우린 곧장 라운지 층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가 고프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카미나기와 타키모리 유미코(초고교급 상담부원)가 사태를 수습하며 다음날 아침에 반드시 식당에서 모여 대화하자고 모두에게 일러두었던 것이다.

물론 협력 같은 눈꼴사나운 짓은 '나'와 태생부터 어울리지 않는 짓이지만… 일단 그 자리에 모인 녀석들 중에 흑막이 있을 거라 주장하는 입장이다보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언제 다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로 무리하는 것도 아마 자신이 정한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는 노력일테지. 난 마음 속으로 경박한 경의를 표하며 카미나기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런 카미나기의 노력과 '나'의 감탄이 무색해지도록….



그 날 아침의 식당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식당 문을 열어제끼기 전부터 경고를 해왔다.

재질은 모르겠으나 꽤 두껍고 큼지막한 문짝 뒤편으로부터 들려오는 비명과 물건이 아작나는 소음은 분명 테러, 혹은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정작 용갑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보니 실제 상황은 예상보다 조금 더 작은 규모로 벌어진 일이었고,

예상보다 조금 더 황당무개한 일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멀찍이 피난해있는 와중에, 초고교급 보디가드 아자부 이토리와 초고교급 아무개 유키야마 카무이가 서로를 향해 무자비한 살육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스키니한 몸매의 여자아이와 건장한 체구의 소년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하나는 그들의 검게 빼입은 복장이요, 다른 하나는 초월적인 신체능력이었다.

다툼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둘은 접시를 깨고, 테이블을 뒤집고, 샹들리에에 매달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던지고, 의자를 집어던지며 전투를 벌였다.

가구나 날붙이 따위가 유키야마 카무이에게 쇄도했지만 녀석은 피할 시도도 하지 않고 모든 투척물을 튕겨냈다. 반대로 아자부를 향한 공격들은 애시당초 그녀 가까이에도 닿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둘이 서로에 대해 피해를 줄 수 있는 건 주먹이나 발 따윌 이용한 직접적인 타격 밖엔 없었다.

보디가드의 구두굽이 유키야마의 몸통을 깊숙히 강타했다. 줄곧 무쇠인간처럼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던 녀석의 얼굴에도 통증으로 인한 가벼운 경련 비슷한 게 떠올랐다.

분명 평범한 사람이라면 갈비뼈가 모두 부서지고도 남을 위력이라고 생각했건만, 유키야마는 그대로 보디가드의 발목을 붙잡아 건너편 테이블까지 던져 꽂아버렸다.



"와~우. 홈런."

카미나기 한나: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어라라. 다시 일어난다. 하긴, 그 거인한테 밟히고도 살아난 녀석이지."

카미나기 한나: "말을 귓등으로라도 듣는 척은 해줄래요?"

"별 수 없잖아. 저 괴물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간 크릴새우처럼 터져버릴걸? 내기나 할까. 난 보디가드가 이긴다에 크레딧을 걸지."


어깨를 으쓱하며 받아넘기자 식당 저편에서 그 말을 부정하듯 누군가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아야키치 슌: "이토리 씨! 그쯤에서 그만둬요! 한 명 죽을 때까지 할 셈이에요?!"

쇼코라 치에: "카무이 오라비!! 깽판 그만 치고 말로 해, 말로!!"


각각 보디가드와 유키야마의 파트너인가.

아야키치 슌, 그리고 쇼코라 치에.

재능은 초고교급 도박사와… 초고교급 '파티시에'.

신체능력은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저 둘이 이런 상황에서도 겁도 없이 덤비는 걸 보면 역시, 파트너를 위하는 마음이 누구와는 달리 두둑한 모양….


쇼코라 치에: "에라잇, 어차피 싸울 거라면 이겨라!! 절대 지면 안 돼!! 알겠지!!!"

아야키치 슌: "뭐엇?! 이토리 씨, 방금 그거 들었죠? 이토리 씨도 지면 안 돼요!!"


…은 개뿔.

저 녀석들도 나사가 몇 개는 빠져 있는 고장품들이구만. 혀를 쯧쯧 찼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은 정말로 왜 싸우는 걸까. 그걸 누군가 말해줬으면 하는데.

그때 몸을 피해있던 누군가가 카미나기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타오르는 주황색 머리칼에 펑크한 옷차림. 초교고급 상담부원, 타키모리 유미코다.


타키모리 유미코: "한나 양, 왔구나!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이토리 양이 선시비를 걸었어!"


어째선지 '나'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카미나기가 달리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도 타키모리는 줄줄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타키모리 유미코: "시비를 걸었다기보단 대뜸 눈에 띄자마자 공격한 거지만…. 아까 듣기엔 '초고교급 사냥꾼'이 어쩌고 하는 것 같던데. 유키야마 군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만 고집하고. 아, 정말. 저러다가 진짜 사람 잡을 때까지 싸우겠어!"

카미나기 한나: "'초고교급 사냥꾼'…?"

타키모리 유미코: "응? 짚이는 거라도…?"


카미나기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짚이는 게 전혀 없어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거려야만 했다.

시청자 대표인 내가 모르는 정보를 흰토끼가 알고있을 리 없을텐데. 카미나기, 보디가드, 그리고 유키야마 사이에 무슨 개인적인 사건이라도 있었던 걸까?

…라고 등장인물인 '나'는 짐작할 수밖엔 없었지만, 서술자인 '나'는 다르다.

초고교급 사냥꾼이라는 용어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은 프롤로그 3/3을 다시 읽고 오도록.



요컨대 아자부 이토리는 유키야마 카무이를 자신과 아야키치 슌, 카미나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로 의심하고 있는 거다.

검고 미래적인 스타일의 옷차림. 체구와 행동거지, 아자부에 버금가는 비상식적인 전투력과. 기억 상실이라는 수상한 상태와 재능을 밝히지 않는 것. 딱딱하기 그지없는 말투까지.

카미나기 또한 이미 유키야마를 의심한 전력이 있지만, 굳이 타키모리의 말에 맞장구를 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예로부터 두 괴수의 소모적인 싸움이 끝을 보는데는 또다른 괴수의 개입이 필요한 법.

이번엔 초고교급 대장장이, 타치바나 츠나요시가 그 역할을 맡은 모양이었다.


타치바나 츠나요시: "적당히들 하시오! …쿠웩!"

"…???"

유키야마 카무이: "?!"

아자부 이토리: "엇."


다짜고짜 싸움의 틈에 비집고 들어간 결과 한순간에 둘 중 어느 쪽보다도 피떡이 되어버린 타치바나. 오히려 그 무방비하고 앞뒤 없는 꼬라지가 겨우 방파제가 된 듯, 유키야마와 아자부는 서로를 향하던 주먹을 멈추고 멀찍이 물러섰다.

코피가 줄줄 흘러 떨어집니다만…. 대장장이 타치바나는 애써 괜찮은 척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씩씩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타치바나 츠나요시: "어찌 이리들 (쿨럭) 사태 파악을 못 하시오?! (쿨럭) 힘을 합쳐 맞서 싸워도 (쿨럭) 모자랄 판국에 (쿨럭) 싸움박질이라니!"

쇼코라 치에: "우와, 저 아저씨, 말 한 마디에 피 한 말을 쏟았어. 조만간 시체 치우겠는데."


아자부 이토리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눈썹을 씰룩댔지만 유키야마 쪽은 애초부터 다툴 생각이 없었던 모양인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유키야마 카무이: "먼저 공격한 건 저 미친 여자 쪽이다, 뱅글눈썹."

아자부 이토리: "뭣도 모르고 끼어들지 마, 디즈니 왕자. 저 새끼가 흑막이라는 데에 내 손모가질 건다."

타치바나 츠나요시: "다들 인신공격에 망설임이 없으시구려…. 쿨럭. 이해는 하오. 어쩔 도리가 없는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이런 방법으로라도 해소하고 싶은 거겠지. 허나 지금은 화를 가라앉히시오! 지금 필요한 건 대화지, 격투가 아니란 말이오!"

아자부 이토리: "이 새끼가 진짜, 사람 말을 어디로 들어쳐먹는 거야?! 저 새끼가 흑막이라니까?! 너야말로 대화를 좀 해라!"

유키야마 카무이: "그런데 흑막이 뭐냐?"

아자부 이토리: "아 씨발 좀!"

카미나기 한나: "…더 이상의 싸움도, 대화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네요. 모두들 머리를 식히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요란한 싸움박질이 끝나고서야 겨우 끼어들어 말을 얹는 카미나기.

아마 폭력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 탓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모양이다. 타키모리가 말을 걸어도 얼어붙은 듯 몇마디 짧은 말로 대꾸한 것도 아마 그 탓이리라.


대화의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아자부도, 죄 지은 대통령마냥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는 유키야마도.

저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고집쟁이들을 어떻게 타이를까, 카미나기를 향한 은근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카미나기는 우선 모두에게 '초고교급 사냥꾼', 그리고 카지노에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시청자 대표인 '나'로서도 꽤 놀라운 이야기였다. 기억을 잃은 시점이 애매한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그 셋의 기억은 명백히 어떤 사건을 공유하고 있었고, 초고교급을 언급한 시점에서 그건 명백히 '단간론파'와 관련되어 있었으며, 납치 혹은 그 이상에 준하는 범죄를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키야마를 '초고교급 사냥꾼'으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로 확정짓기엔 마땅한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직감을 내세우는 아자부 이토리로서는 억울하겠지만 대다수의 의견이 그쪽이었다. 그 난리통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그녀도 다수결이라는 '불합리의 몽둥이'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자부 이토리: "너네 진짜 후회한다. 분명 후회할 거야."

유키야마 카무이: "흥. 모른다, 몰라."

아자부 이토리: "아오 씨…."


첫 번째 문제는 그렇게 넘어갔다. 어째서 그 세 사람만 특별한 건지, 초고교급 사냥꾼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가 우리들 사이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미루어졌다. 뾰족한 단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두 번째가 있기 때문이고, 그 정체는 다름아닌 시청자 대표에 대한 논의였다.

곧바로 신지와 '나'에게 초점이 쏠렸다. 젠장. 이렇게 될 거란 걸 예상치 못한 건 아니지만, 하도 지은 죄가 많은 입장이다보니 제 발이 절로 저렸다.


후네즈 신지: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봐♤."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건 대체 어떻게 읽는 부호야?"


신지는 멧돼지와 하루히와는 달리 조직의 원년 멤버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어 카미나기와는 다른 의미로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지만 보기와는 달리 이해심이 깊은 녀석이라 의지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된다.


시청자 대표들이 심문을 받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번이고 말했지만 기억을 잃지 않았고, 다른 초고교급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으며 '단간론파'라는 비상식적인 컨텐츠에 가장 익숙한 자들.

동료를 둘이나 잃은 우리의 심정 따위 녀석들에겐 크게 신경쓸 일도 아니었을테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정잡배들의 죽음보단 당장 시험대에 놓인 자기 자신들의 목숨이 중요할 테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아자부 이토리: "…희생자 모두 무덤은 만들어뒀어. 온통 사막이지만 오아시스 쪽에 그나마 쓸만한 흙이 있어서."

"……하아?"

아자부 이토리: "비록 가상현실의 아바타일지 몰라도 신경쓰일 거 아니냐. 동료인데."

"……."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라, 진심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보디가드.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치곤 헤아리는 게 너무 깊지 않나?

거 참. 이래서 츤데레 캐릭터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롱런하는 건가, 싶었다.



아자부 이토리: "어이? 반응 좀 하지? 혹시 허락도 없이 멋대로 시체를 건든 게 잘못이라고 한다면…."

"…하하. 아냐, 아냐. 가상현실 무덤이라니, 그것 참 쓸데없는 짓을 했다 싶어서. 완전 바보 아냐?"

후네즈 신지: "……♤."

아자부 이토리: "…쳇.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싸가지하곤."



고맙다는 말을 하기엔 나도 신지도 수줍음이 너무 많은 범죄자들이다.

감사인사는 성실한 질의응답으로 하자.



"멍청한 질문을 받기 전에 먼저 포석을 좀 깔아두겠는데,"


'나'는 푸석푸석한 빵을 찢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렇다. 사실 '나', 특별한 미식이 아닌 싸구려 음식도 잘만 삼킨다. 더군다나 그 당시처럼 배고픔에 쩔어 있을 때엔 뭐라도 좋으니 입에 집어넣고 보는 것이다.

말의 뒷부분은 그 수세미같은 빵을 삼키고 나서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학급재판 당시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다느냐던가, 흑막에 대해 아는 사실이 없느냐던가 하는 얼빠진 소린 하지 마라. 제발. 살인 충동이 들려고 하니까."

후네즈 신지: "맞아. 우린 말썽은 좀 피우고 다녔어도 사람 죽이는 피에로들과 엮일 일은 없었으니까♤. 류이치 군이 어디에 숨었었는지는 지금 상황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시온 피트인지 뭔지 하는 년도 뉘신지 전혀 모르고, 적어도 우리가 제공받은 정보 중에서 흑막을 특정해낼만한 무언가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후네즈 신지: "녹화장의 위치라던지 그런 것들도 철저한 비밀로 진행되었으니 묻지 마♤."

타키모리 유미코: "그것 참… 하하. 참 다양한 이유로 쓸모없네…."


힘빠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려봤자 해줄 위로는 없다, 이 빗치년아.


타키모리 유미코: "뭐 됐어. 다들 눈치보는 것 같으니 내가 가장 먼저 물어볼게. 카라스야마 군. 그렇다면…."

유키야마 카무이: "…내 재능은 뭐지?"

타키모리 유미코: "아! 새치기라니 비겁해!"


뚱하니 입을 다물고 있다 대뜸 질문해오는 건 방금까지 성난 곰처럼 날뛰던 유키야마 카무이.

초고교급 아무개. 아무런 재능도 기억도 없는 녀석.

그레이트 에구이사루를 보고서 무언가 떠올린 듯한 녀석이었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 아주 당당하게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해 왔다.

뭐….

알고있는 대로 답해주자. 그러기로 약속했으니.



"몰라!"

유키야마 카무이: "…몰라?"

"응. 모른다고. 우리가 받은 정보엔 네 뚱해보이는 사진 몇 장과 이름 말곤 아무런 힌트도 없었어. <초고교급 ???>라는 타이틀과 '이 사람의 초고교급 재능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라는 어중간한 설명 말곤."

유키야마 카무이: "……."


할 말을 잃은 건 지켜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상상은 간다.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유키야마를 흑막으로 유추할 법 한 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거겠지.

…라고 누가 입 밖으로 마음의 소리를 꺼내기도 전에, 뾰족뾰족한 불꽃 머리의 초고교급 변호사, 무라츠바키 마사오미가 대뜸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시청자 대표로서 제공받은 정보는 어디까지나 방송국이 출처입니다. 고작 방송국이 유키야마 씨의 재능을 감추려고 했다 해서 그를 흑막으로 몰고 갈 순 없습니다. 오히려 방송국에서 한 발 앞서 그의 정체를 보호했다는 점에서, 유키야마 씨는 확실한 아군에 가깝겠지요."

유키야마 카무이: "……."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더군다나 유키야마 씨는 기억을 잃은 와중에도 그레이트 에구이사루에게 적대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제게 유키야마 씨는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기보단, 이 상황을 타파해나갈 히든 카드로 보이는군요."

쇼코라 치에: "그치 그치, 우리 오라비는 나쁜 사람 아니라구. 뭐, 나쁜 사람이어도 아무 상관 없지만!"

유키야마 카무이: "……상관 없는 건가…."


어쩐지 실망감이 느껴지는 기운빠진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유키야마.

명확한 정체도 속도 알 수 없는 녀석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에게 남을 속일 의지따윈 없으며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는 소년. 그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누구도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결국 시청자 대표를 향한 문답은 시시하게 몇 가지 뻔한 질문을 더 주고받고서 끝이 났다.

단간론파의 전통 상 학생들 중 분명히 흑막이 있을 거라는 점.

누군가 카미나기를 습격하고 기억을 지운 것 같다는 이야기.

대충 모두들 알아야 할, 그리고 알아도 상관 없을 정보들만 공유한 셈이었다.


그 이후엔 대책회의였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알았는데, 타노 나타타와 이시미네 칸, 토미하레 소루가 불참했다.

가만히 앉아서 구조를 기다리자는 카미나기와 흑막을 찾아 없애야한다는 '나'의 의견이 대립했듯이, 초고교급 학생들 사이에도 꽤 첨예하게 날 선 말들이 오갔다.



대략 세 부류로 나누자면 카미나기 파, 카라스야마 파, 그리고 시가라토 유즈 파라고 할 수 있을까.


카미나기 파~~ 카미나기와 타키모리, 아리스 윈터우즈, 무라츠바키, 키쇼. 어떻게든 살인이 발생하는 것만을 막으면서 구조를 기다리자는 편.

카라스야마 파~~ '나', 아자부 이토리, 쇼코라 치에, 유키야마 카무이, 신지. 흑막을 찾아서 처치하면 어떻게든 활로가 열릴 거라는 의견.

방금 전까지 치고박던 아자부와 유키야마가 같은 의견이라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시가라토 유즈 파~~ 시가라토 유즈를 주축으로 아야키치 슌, 타치바나 츠나요시, 이나모리 쿠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할 수 없고, 흑막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 이 노답 새끼들은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명확하지가 않아 결국 자기들끼리도 언쟁을 벌였다. 조별과제에서 절대로 만나선 안 되는 유형이 이 새끼들이다.



학급재판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두 시간 가까이 떠들어댔지만 결국 이야기는 돌고 돌았다.

흑막이 분명히 존재하니 흑막을 죽이면 될 문제다.

아니다. 어차피 가상현실 속인데 흑막을 죽여서 뭐하나?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게 옳은 선택이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신 포도가 떨어지진 않는다. 흑막과의 접촉은 피하면서 꾸준히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이야기라는 거다.

그래도 일단 무력은 카라스야마 파가 압도적이라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카라스야마 파'라고 주장하는 건 오로지 '나'의 편파적인 머릿속에 한해서였지만.)

좌 아자부 우 유키야마. 그레이트 에구이사루를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는 전력이다. 흑막을 찢어죽이는 데엔 충분할 테다.

물론…. 가상현실 속에서 흑막을 죽여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 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죽이는 걸로 안 된다면 잡아서 고문이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뭇 학급재판이 그러하듯 우리들끼리의 열띤 논쟁도 타임 리미트가 있었다.

모노쿠마를 처치하고 호텔 지배인 지리를 꿰찬 '모노사메'가 행방이 묘연했던 타노 나타타, 이시미네 칸 그리고 토미하레 소루를 포획해서 식당까지 질질 끌고 온 것이다.

손발이 없는 상어가 어떻게 사람을 포박하고 질질 끌고오기까지 하냐는 질문은 하지 말아주길.

아직 '나'를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도 새롭게 바뀐 마스코트에 익숙해지기 전이었으니까.


그 커다란 지느러미를 마음껏 펄럭거리며, 흑백의 상어는 우렁차게 말의 포문을 열었다.


모노사메: "느푸푸풋~ 지배인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이렇게들 모여있다니 기특하구만! 몇 안되는 이단아들이 있는 것 같지만 말일세!"

이시미네 칸: "웁! 웁웁! 웁!!"

토미하레 소루: "……."

타노 나타타: "우웁~♡♡♡"

"……우웩."


모노사메의 포박에 보이는 반응도 제각각.

얼음공주처럼 차갑고 도도하게 모노사메를 째려보는 토미하레 소루도 그랬지만, 어디서 약이라도 빨고 온 건지 침을 질질 흘리며 기뻐하는 초고교급 실험부원 타노 나타타의 모습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한편 밧줄에 칭칭 감겨 피래미처럼 발악하는 이시미네 칸은… 도무지 초고교급이라곤 생각할 수가 없는 실망스런 추태다.

파트너인 이나모리 쿠키도 동감했는지 발로 녀석의 옆구리를 꾹꾹 밟아버렸다.


모노사메가 식당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무대를 옮길 때가 된 것이다.



모노사메: "살인게임 제 2막을 위해 두 번째 '돔'으로 장소를 이동하겠네! 그럼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당장 분수 홀로 모여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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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쿠마와 달리 모노사메는 사무적이었다.

이 '사무적'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인간에 한없이 가까운 감정과 목소리를 지닌 모노쿠마에 비해 차갑고 기계적인 음성을 내뱉는 것, 철저히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듯 참가자와의 쓸데없는 대화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바보 모노쿠마보다 훨씬 일처리를 잘하는 것 등이 거기에 포함되었다.


'무대를 옮기겠다'라는 선언이 '이미 무대는 옮겨졌다'라는 뜻일 거라곤 게을러빠진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다면 무덤에 꽃 올릴 시간 정도는 달라고 협상이라도 해봤을 것을.



모노사메의 뒤를 졸졸 따라 분수홀을 지나고, 천공 모노쿠마 호텔의 출입문이 개방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모두는 전혀 뜻밖의 경치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처럼 찬란한 베가스의 햇살은 어디로 가고, 차갑고 습기찬 안개가 온기를 찾아 헤매듯 문 밖에서 빨려들어왔기 때문이다.

뿌옇고, 축축하고, 짠 시체 냄새가 풍기는 그것은,


그것은 명백한 바다의 향기였다.




모노사메: "살인게임의 두 번째 무대, '어촌'을 여러분에게 소개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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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의 모티브는 프롬사의 모 게임에 나오는 배경입니다
참고하시면 감상에 도움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