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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화

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를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발언자의 신원을 표기하기 위해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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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 ch.2 비일상편
<까마귀가 싸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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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너무 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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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한 코토다마 목록



<모노사메 파일 #1}
시체 발견 장소는 부둣가, 사인은 목뼈 골절.
유난히 성의없는 내용이다.


<손상된 안면}
시체의 얼굴은 보존상태를 감안하더라도 심하게 훼손되어있다.


<쇠사슬}
시체의 다리에 묶여있던 무거운 쇠사슬.


<인상착의}
시신의 머리카락과 인상착의를 봤을 때 시신의 주인은 분명히….


<드라이아이스 창고}
다량의 드라이아이스와 카트가 구비된 창고.
잠금장치가 고장난 것으로 보아 누군가 다녀간 것 같다.


<이나모리의 증언}
누군가 낚싯배와 조각배를 타고 나간 흔적이 있다.


<떠밀려온 카트}
해안가에 밀려온 카트. 냉동창고에 있는 것과 같은 물건으로 보인다.


<의미 없는 등대?}
굳게 잠겨있는 등대.
아무런 힌트도 찾지 못해 의미를 알기 어려운데….


<연구교실의 쪽지}
토미하레 소루의 연구교실에서 발견된 쪽지.
'항구에서 봐요…. 당신만큼이나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보여줄게요…. 반드시 혼자…'


<개인실의 쪽지}
인쇄했다고 해도 믿을만큼 바른 글씨로 쓰인 글씨. 그에 비해 그림실력은 형편없다.
'22시까진 돌아올게요.
(\(\     
(  -.- )
O_(")(")     '


<CD 플레이어}
토미하레 소루의 연구교실에 있던 물건. 구닥다리지만 볼륨은 꽤 큰 편이다. 구비된 CD는 토미하레 소루의 연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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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아! 자유 시간이 종료되었다네! 잠시 후 학급재판을 개정할 예정이니, 제군들은 천공 모노쿠마 호텔로 집합해주길 바라네! 이상!>>



"…아, 좆됐네 이거."


조사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나 짧게 주워지는 건가, 싶어 모노쿠마 뱅글을 확인했더니 과연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찾아낸 단서라고 할 만한 건 고작해야 열 개 남짓.

이대로 학급재판을 치르면 분명 크게 곤란해질 것 같지만, 사실 별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존나 똑똑한 초고교급 브레인들이 있으니까.

아직 고작 두 번째 학급재판이고 생존자만 열 여섯이다.

첫 번째 재판을 찢어놓은 카미나기가 없어졌음에도 아직 재판을 승리로 이끌만한 재능들은 충분히 남아있다는 의미다.

카미나기와 동급의 지능에 센스는 그 이상이라는 아야키치 슌.

날카로운 식견과 논리의 아자부 이토리.

통제 불능이지만 아군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도 든든할 타노 나타타.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이빨을 드러내지 않은 호랑이, 무라츠마키 마사오미라는 재판의 프로도 있다.

브레인들끼리 의견이 갈려서 치고박는 최악의 사태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겨우 두 번째 학급재판에서 이 배가 침몰할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는 서둘러서 학급재판장을 향했다.




-




-



천공 모노쿠마 호텔의 옥상.

두꺼운 안개에 휩싸여 마치 새하얀 스크린을 두른 듯하다.

푸른 달빛은 힘없이 부서져 은은한 바닷방울이 되고, 살해당한 등대는 영영 빛을 잃어 어둠 속에 꽁꽁 숨었다.

바람이 차갑고 습하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배배 꼬인다.

추위 때문에라도 재빨리 학급재판을 클리어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일이 그렇게 순조롭게 풀릴 리가 없겠지.

자리가 넉넉하게 남은 학급재판 지정석에 선 '나'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카미나기의 자리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쩐지 있어야 할 게 없는 듯한 오묘한 기분이 들어 허전하다.



어째선지 똑같은 포즈로 팔짱을 끼고 등을 돌린 채 벌레 씹은 표정으로 얼어붙어있는 태그 B.

카미나기의 죽음에 가장 분개할 녀석들이라고 여겼는데, 어째 분위기가 예상과는 살짝 엇나간 것 같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걸까.


쇼코라 치에: "으, 으으…. 젠장, 제기랄, 죽어, 죽어, 죽어…. 망할, 망할!"

유키야마 카무이: "……나쁜 말인 거 다 안다. 꼬맹이."

입술과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증세를 보이는 쇼코라 치에, 그런 쇼코라를 말없이 지켜보다 결국 손을 억지로 붙잡고 저지하는 유키야마.


타키모리 유미코: "……."

초조하게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홀로 기대 서 있는 타키모리.


공석. 넘어진 십자가 무늬가 그려진 하루히의 영정과 펜싱 검 두 자루가 교차된 키리누키의 영정.


타노 나타타: "흐음~ 이 녀석이 이렇게 해서… 저 녀석이 요렇게 하고… 그 녀석이 그렇게…. 아하! 아하핫!"

타치바나 츠나요시: "……."

혼자서 추리 놀이라도 하고 있는지 열렬하게 노트에 뭔가 써제끼고 있는 타노 나타타.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빠진 타치바나 츠나요시.


이나모리 쿠키: "코로세…. 오마에오 코로세…!"

이시미네 칸: "학급재판 준비에 집중하십쇼, 딴 짓 말고…. 대체 아까부터 뭐에 그렇게 화가 난 겁니아?"

물에 푹 적셔진 침낭와 수면안대를 껴안고 이쪽을 날카롭게 째려보는 이나모리 쿠키. 이젠 당연하다시피 잔소리를 쏟아내는 이시미네 칸.


아리스 윈터우즈: "읏, 새벽에 방에 왔던 이상한 분…."

후네즈 신지: "여어. 여."

이쪽의 시선을 의식하곤 겁에 질려 움츠러든 아리스 윈터우즈.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드는 신지.



카리나의 영정. 그리고 부채로 입을 가린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시가라토 유즈: "…칫. 글렀네. 재수가 없기로서니."

키쇼: "하하…. 이럴 때에도 배우는 웃어야 되는 검다…."


라이터를 틱틱거리다 습기에 불이 붙지 않자 짜증을 내는 시가라토.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키쇼.



목숨을 건 두 번째 학급재판을 위해서 모두가 제시간에 제자리로…

모인… 건가?




"…잠깐만. 인원수가 안 맞는 것 같은데? 토미하레 소루, 그 새끼 어디갔냐?"

타키모리 유미코: "윽. 그, 그게… 모르겠어."

"몰라?"


허공을 향해 던진 질문에 실종된 토미하레의 파트너, 타키모리가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타키모리 유미코: "방송이 울렸는데도 나타나지도 않고, 그 때문에 조사도 못하고 찾으러 다녔는데도 결국 못 만났어…. 미안, 대신해서 사과할게. 모자란 파트너 대신 열심히 할 테니까 이해해줘."

"흐응…. 그렇단 말이지. 재판 불참이라. 좆같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욕지거리를 한사발 끼얹어버리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지난 학급재판 때 벌려놓은 업보가 있다보니 입을 다물 수 밖엔 없었다.

어쨌든 규칙 상으론 태그 중에서 한 사람만 학급재판에 참여하면 되니까, 모노사메가 따로 문제삼지 않는다면 이대로 학급재판은 진행될 터다.

그의 부재가 거론되었음에도 입을 꾹 닫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고.


토미하레의 부재도 그렇지만 또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학급재판때마다 공개되는 플레이어들의 NG 행동 카운트.

이상한 짓을 하다가 겨우 한 목숨 씩만 남은 '나'와 카미나기는 그렇다쳐도, 카운트가 줄어든 녀석들이 의외로 드문드문 보였다.

지난 학급재판에서 카미나기의 내기에서 패배한 아야키치 슌, 남은 카운트 두 개.

쇼코라 치에와 타치바나 츠나요시, 이시미네 칸, 그리고 후네즈 신지. 남은 카운트 두 개.

신지 놈은 그렇다 쳐도 다른 놈들은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카운트가 줄어든 건지.

목숨이 걸려있는 걸 알았다면 오히려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속이 어지러워지고 있던 참에, 모노사메가 더 이상의 준비는 필요없다고 느낀 건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모노사메: "오래 기다렸군, 제군들. 학급재판의 진행을 맡은 지배인 모노사메라네! 후후, 지난 재판으로부터 수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자네들에게 구원의 손길은 오지 않았구먼. 자네들의 모습은 여전히 다크 웹을 통해 전세계로 무사히 송출되고 있지만 말일세. 느푸풋."

쇼코라 치에: "'다크 웹'…? 그게 뭐야?"

타치바나 츠나요시: "추적이나 검열이 어려운 어둠 속의 인터넷 공간을 말하는 것이오….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가 흔하게 자행되는 곳이지."

이시미네 칸: "그런 곳에 우리들의 살인게임을 내보내고 있다는 겁니까…? 젠장, 제멋대로도 정도가 있지!"

시가라토 유즈: "아니, 오히려 경찰이 우리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으니 다행이야…. 기분은 좀 나쁘지만 잘 됐어."

모노사메: "자, 그럼 본격적으로 학급재판을 실시하기 전, 간단하게 규칙 설명을 다시 하겠네!

학급재판이란 말 그대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내기 위한 재판!

조사한 단서들과 여러분의 추리를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살인사건의 '검정'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게나!

다수결에 의해 검정으로 결정된 사람이 검정이 맞다면 학급재판 무사통과, 틀렸다면 어이쿠, 전멸!

학급재판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검정은 살인이라는 죄의 무게에 걸맞는 '벌칙'을 받고, 나머지 하양들은 즐거운 살인 호캉스를 계속 즐기면 된다네!

허나 만약에라도 학급재판을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면? 검정은 승자 보상과 함께 이 호텔에서 빠져나갈 권리를 얻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행사한 표에 상관없이 싸그리 '벌칙'을 받지!

여기서 천공호텔 단간론파의 스페셜 룰! 알파벳으로 묶여진 서로의 태그 파트너에 한해 공범이 인정된다!

따라서 범인을 지목할 때에는 개인이 아니라 범인이 소속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태그를 지목하면 되며, 범인과 범인의 공범은 학급재판의 모든 벌칙과 베네핏을 공유하게 된다네!

느푸풋, 모르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이제 정말로 시작하면 되겠군.

자아. 학급재판, 개정!"




모노사메의 말이 멎음과 동시에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창(window)들이 생성되었다.

대체로 어두운 방. 화질이 나빠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그나마 모습이 보이는 자들은 대개 피에로 가면을 쓴 아무개들이었다.

여성, 남성, 10대, 직장인, 근육질, 비만….

웹캠 화면 옆으로는 채팅으로 추정되는 여러 언어의 텍스트들이 둥둥 떠다닌다.


~드디어 두 번째 학급재판!~

~하하, 열심히 해 주었네. 피에로 군들. 피에로 업! 피에로 업!~

~한나 쨩이 죽어버린 건가?! 시체, 암시장 경매에 뜨려나?~

~처형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 팔다리만 자르고 살려서 나한테 팔면 안될까?~

~무슨 소리! 한나 쨩의 신체는 인류의 재산이라고? 조각조각내서 나누는 게 당연하잖아ww~



다크 웹에서 살인게임을 생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인가. 구역질이 절로 나온다.

물론 저들 중에는 생존자들의 근황을 파악하기 위해 숨어들어온 경찰이나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이번엔 정말로 '목숨을 건 살인게임'에서 살인을 저질러버린 우리들을, 그들이라고 해서 예전과 똑같이 바라봐줄까?





무라츠바키 타케오미: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학급재판이 개정했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는 걸 보면."

"…뭐야. 나한테 하는 말?"



무라츠바키가 먼저 입을 여는 건 어지간히도 드문 일이었기에 '나'는 잠시 눈을 꿈뻑거렸다.

무슨 생각인지 읽어보려해도 눈빛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고 하관은 부채로 가려서,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뭐야. 서로 나이프 한 번 겨눈 걸로 친구라도 된 줄 아는건가? 미안. 토미하레 정도라면 모를까, 남자친구는 두지 않는 주의라."

무라츠바키 타케오미: "후, 무슨 말을. 파트너를 잃고 외톨이 처지가 되어서 어영부영 표류하는 꼴이 우스웠을 뿐입니다."

"하?"

무라츠바키 타케오미: "강한 척 할 필요 없습니다, 카라스야마 류이치. 당신 꼴엔 나름 페르소나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저처럼 어느 정도 인간성에 눈이 뜨인 사람들에겐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시무라 카리나, 레이몬 하루히의 잔혹한 최후. 하나 남은 동료와는 어쩐지 협력하기가 쉽지 않고, 마지막 남은 기댈 구석이던 파트너는 급사. 애처롭군요."

"……."

무라츠바키 타케오미: "…뭐 됐습니다. 카미나기 씨는 거슬리긴 했지만 부정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아보도록 하죠."



이 녀석.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아니면 정말로 미행당해서 분풀이 하는 건가?

자극적인 도발의 연속이었지만 워낙 급작스러워서 화도 나지 않았다.

무라츠바키 녀석은 아는 지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다른 녀석의 심기를 건드려버린 것 같고.


아야키치 슌: "……."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무라츠바키를 응시하는 아야키치 슌.

…이거, 어쩐지 '나와서는 안 될 단 하나의 그림'이 벌써부터 그려지는 것 같다.



타키모리 유미코: "자, 자. 남정네들. 괜한 수컷 자존심 싸움 하지 말고 재판이나 시작하지? 지금 너희만 심란한 거 아니거든?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잡아내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지 않겠어? 죽은 한나 양을 위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말야."

아리스 윈터우즈: "아, 어쩐지 화나신 것 같아요, 유미코 양…. 살인을 막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잘 되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거의 매일 상담실에서 사셨는데."

후네즈 신지: "무후훗. 글쎄, 내 눈엔 사라진 파트너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은데?"

키쇼: "글쎄에, 그래도 카미나기 씨와 나름 좋은 사이였잖슴까?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함다. 물론 저도! 저도 화가 남다! 누가 감히 카미나기 씨를 죽인 검까! 괘씸함다! 괘씸죄임다!"

타키모리 유미코: "으으…. 됐어, 다들 그렇게 뜸 들일 거라면 내가 먼저 시작할게. 그다지 짚이는 건 없지만 기초적인 것부터 건들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타키모리가 말을 이었다.



타키모리 유미코: "일단은 사건 전후의 상황과 시체…의 정보부터 종합해보자. 최대한 내가 아는 선에서만 이야기할테니 잘못된 게 있다면 지적해줘.

일단 피해자는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 <카미나기 한나>야. 우리 모두 알다시피 상냥하고 친절한 우리들의 친구였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살 법한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정말로.

하지만…. 어제 저녁시간 이후부터 행방이 묘연했던 한나 양은 <카라스야마 군, 무라츠바키 군, 나, 아야키치 군, 그리고 이토리 양>이 합세해서 오랜 수색을 걸친 끝에 오늘 새벽 <쓰레기 수거선>에서 물에 빠진 시체로 발견됐어.

시체의 <보존상태>는 심각하다못해 끔찍해. 물에 빠져서 살갗이 불어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은 둔기 따위로 알아볼 수 없을만큼 손상됐으니까.

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사인은 <익사>라고 생각해는데….

어때? 다들? 방금 내 발언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었을까?"



타키모리가 대충 얼버부리며 말을 맺었다.

언뜻 들어도 사실과는 잘못된 정보가 있지만, 굳이 나설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탐색 전략으로 가자. 볼륨을 죽이고 가만히 관찰하는 거다.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누가 지나치게 말을 아끼는지.

어이없을만큼 간단한 문제다. 누가 먼저 달려드는지 한번 볼까.



이시미네 칸: "…아무래도 그건 오류가 있군요, 타키모리 씨."

타키모리 유미코: "엣."

이시미네 칸: "사인 말입니다, 사인. 시체의 상태만 보면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모노사메 파일에 의하면 카미나기 씨의 사인은 <익사>가 아닙니다. <목뼈가 부러진> 게 그녀의 직접적인 사인으로, 사체에는 밧줄 따위로 목을 졸린 흔적도 있다고요?"

유키야마 카무이: "…분명 그랬지. 모르는 게 많은 나도 그 정도는 알겠군."

타키모리 유미코: "아, 그, 그래…. 그렇구나…. 목이 부러진 거구나. 하하."

이시미네 칸: "'하하'? '하하'? 이것 참, 실수를 웃음으로 무마하려 하다니! 조사는 제대로 하셨습니까? 목숨이 걸려있는 판이란 말입니다! 자꾸 그렇게 할 거면 그냥 집에 가세요!"

타키모리 유미코: "윽…. 제대로 못 했으니까 틀린 게 있으면 지적해달란 거 아냐!"

이시미네 칸: "예?! 무슨 그런 말이 있습니까…?"

타키모리 유미코: "…그런 시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 이래뵈도 나도 얼마 전까지 평범하게 학교 다니던 고교생이란 말야…! 이럴거면 집에 가라니. 누가 집에 가기 싫어서 이러는 줄 알아!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이시미네 칸: "흥. 시체는 둘째쳐도 사인 정도는 모노사메 파일만 확인해도 알 수 있었습니다. 변명이 궁색하군요? 누군 고고생 아닙니까? 예? 누군 고생 안해요? 팔다리에 깁스 찬 거 안 보이십니까? 장애인보다 가녀린 여고생인게 더 큰 페널티인가요?"

타키모리 유미코: "윽…."



…저 둘은 대체 왜 사이가 나쁜 걸까? 성별만 다르지 성격은 가장 비슷해 보이는데.

달리 변명할 말이 없던 타키모리는 결국 눈을 질근 감으며 잘못을 시인했다.



타키모리 유미코: "…좋아, 방금은 내 실수였어. 만회하면 되잖아, 만회하면."

안경거치대: "흥. 말이 쉽지. 어떻게 하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타키모리 유미코: "어우, 어떻게든 한 마디를 안 지려고…. 좋아. 발견 당시 시체의 상태를 파악했으니까, 이번엔… 한나 양의 목이 부러지게 된 경위를 추리해보자고.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보자는 거야."

후네즈 신지: "아주 열심이네. 후훗."

타키모리 유미코: "하아…. 자, 조용히 하고 얘길 들어봐.

한나 양의 사인은 방금 거론되었듯이 목의 골절상이야. 즉 목뼈가 부러져 죽었다는 건데, 아마도 밧줄로 목을 졸린 자국이 있는 것과 관계가 있겠지.

목이 졸려 서서히 질식사 한 게 아니라 골절, 즉 연수가 박살나 물리적으로 뇌사했다는 건데, 이건 꽤 강력한 물리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야. 누군가 수도꼭지처럼 목을 확 비틀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목에 줄을 매달고 높은 곳에서 낙하한 게 되겠군요. 보통 교수형의 경우가 후자에 속합니다. 어지간한 높이가 아니면 제대로 뼈가 부러지지 않아 고통스럽게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타키모리 유미코: "…무라츠바키 군. 분명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말 끊지 말라고 경고했을텐데. 맞아. 그래서… 이 죽음의 형태는, 아무래도 <자살>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헛소리 하기는."

타키모리 유미코: "뭐?!"


경고따윈 무색하도록 무라츠바키는 타키모리의 추리를 날카로운 칼날로 베어냈다.

너무나도 그의 단호한 일갈에 타키모리 뿐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도 한껏 움츠러들었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이번에도 <모노사메 파일>입니다. '몸싸움의 흔적 존재'. 짧게 적혀있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직접적인 조사를 통해 사체의 전신에 걸쳐 타박상의 흔적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물에 불은 사체다보니 사후에 생긴 건지 생전에 생긴 건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사인이 '자살'이라면 그런 흔적은 생기기 어렵겠죠. 더군다나 얼굴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훼손당할 일도 없을테고."

타키모리 유미코: "…!"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하아…. 제 생각엔 말입니다. 타키모리 유미코 씨. 피해자인 카미나기 한나는 아주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살해당했습니다.

사후에도 자국이 남을 정도로 린치당하고,

저항하지 못할 만큼 얻어맞은 뒤에!

목에 억지로 밧줄을 매여지고, 어느 높은 장소에서 아래로 내던져진 겁니다! 마치 끔찍한 중죄를 지은 전범을 처형하듯이!

참으로 잔혹한 범행수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타키모리 양?"

타키모리 유미코: "으, 으으, 응…. 그렇지…? 그야 살인이라는 게 다 잔혹한…."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랬습니까?"





타키모리 유미코: "……."

타키모리 유미코: "…… …… ……?"

타키모리 유미코: "에?'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알아듣지 못했습니까? 아까부터 벌벌 떨더니 귀까지 어두워진 모양이군요.

타키모리 유미코,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 토미하레 소루를 카미나기 한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타키모리 유미코: "……!!!"

아야키치 슌: "……."




오호라….

이번 학급재판…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을지도?



-




-




<???, ???, ??????????>




-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체스판. 마주보는 병정들.

똑딱이는 메트로놈.

붉은 조명.

검은 머리카락.

9-11세 정도로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

기울어짐 하나 없이 다소곳하게 의자에 앉은 소녀는 마치 고딕 인형처럼 꾸며져 있다.

어색하도록 화려한 드레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진한 화장.

새하얀 토끼 인형을 꽉 쥔 손.
햇빛을 쐬면 녹아버릴 것처럼 하얗고 작다.

황금색 눈동자 속.
성냥불보다도 얕고 위태로운 영혼이 희미하지만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다.

소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그녀의 발 아래.

누군가 쓰러져있다.

작은 소녀보다는 조금 더 큰,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흰 머리의 소녀가. 마치 총살당해 쓰러진 전쟁포로처럼 힘없이 고꾸라져있다.

검은 머리의 소녀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흰 머리의 소녀 앞에 다시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은밀하게 그녀의 귀에 속삭인다.



일어나. 일어나서 그 둔한 몸뚱이를 움직여.


계속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라면….


차라리 내게 몸을 넘기고, 죽어버려.




-





"안돼…! …?"



단말마에 비슷한 비명을 지르며, 카미나기 한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상. 어쩌면 그저 꿈일지도 모를 테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너무나도 불길한 소녀의 모습과 목소리였다.

환상도 환상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현재.

눈앞에 깔린 칠흑같은 어둠에 카미나기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쁘다.

사막을 통째로 들이킨 것처럼 목이 타고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서 유통기한이 지난 냉동육이 된 것 같다.

몸에 힘을 주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얇은 노끈 따위의 날카로운 감촉이 손목과 발목을 파고들었다.

꺼슬꺼슬한 콘크리트 바닥의 싸늘한 감촉이 그녀가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긴장과 공포가 등골을 타고 올라와 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두개골 속에 차갑게 식은 자갈이 굴러다니는 것만 같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어떻게 된 거야.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거야.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빛의 자국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얼마 전에도 느낀 적 있었던 무력감이 압도적인 공포가 되어 또다시 목을 조여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누가, 누가 좀…!"

"여기 사람 있어요! 슌! 이토리 양! 키쇼 군! 도와주세요! 도와, 도와줘요! 제발! 제발!"

"하, 하아…. 하아…. 하아…!"



덫에 걸린 토끼처럼 애처롭게 낑낑거려도 도움의 손길 따윈 올 기색도 없었다.

듣기 싫은 목소리만 메아리 쳐 돌아올 뿐.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을 소리지르다 기진맥진해 쓰러진 카미나기 한나에게,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 설마.'


'설마…. 내가 살해당해서 현실로 돌아온 건가?'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되짚어본 그녀는 반쯤 그 추리를 확신했고, 동시에 좌절했다.



'맞아, 그랬었지…. 나는 '그 사람'에게 공격당해서…. 약을 바른 손수건 같은 걸….'


밀려오는 자책감과 후회. 어째서 조금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조금 더 의심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죽음으로써 동료들을 학급재판이라는 위기에 또다시 빠뜨렸다는 생각에 카미나기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처참한 시체를 목격하고 조사할 아야키치 슌을 생각하니 저절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후회하고 있을 틈은 없다.

이곳이 피에로들이 장악한 현실 속이라면, 더더욱 그녀는 발버둥쳐야한다.

이곳에서의 죽음은 정말로 끝이다. 끝. 정말로 살이 찢기고 목이 베여나가는 문자 그대로의 죽음이다. 게임 오버 따위가 아니라 디 엔드다.

움직이자. 발버둥치자. 몸을 지배한 공포에서 벗어나자.


스타킹 한 겹 덮지 않은 무릎이 콘크리트에 짓물릴 때 쯤이 되어서야 겨우 두 발로 일어선 카미나기는 강시 같은 총총걸음으로 어둠 속을 나아갔다.

갑자기 발 밑이 푹 꺼질지, 날카로운 압정 밭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카미나기는 나아갔다.

어둠의 끝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몇 번의 점프 끝에 단단한 칠흑의 벽에 부딪힌 카미나기는 꼴사납게 신음하며 고꾸라졌다.

괜찮다. 벽을 찾았다는 건 방의 구조를 파악할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다.

무엇 하나라도 걸려달라는 심정으로 맨 어깨와 이마를 벽에 대고 질질 몸을 끌고다닌 카미나기는,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날카로운 금속 조각에 어깨를 베인 후에야 신음과 함께 쓴웃음을 지으며 이동을 멈췄다.

아프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금속 조각에 묶인 손목을 가져다대고 비볐다. 안간힘을 쓰다 못해 손목에서 피땀이 송글송글 맺힐 쯤이 되어서야 탁 소리를 내며 양손의 자유를 되찾았다.

구속에서 벗어났지만 미지의 어둠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둠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피에로들의 시선을 피해서 달아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피에로들에게 잡혀서 시무라 양이나 하루히 양, 키리누키 씨처럼….

뭐라도, 뭐라도 해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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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모리 유미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무라츠바키 군? 내, 내가 한나 양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토끼같이 충혈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타키모리 유미코.

목소리는 떨리다 못해 부서지고 있다. 작은 꽃잎이 수백 갈래로 찢겨나가는 이미지다.

티끌만큼의 죄악도 묻지 않은 듯한 순진한 눈을 통해서, 조금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억울함과 당혹감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봐도 살인자의 얼굴은 아닌데.


타키모리 유미코: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어떻게 한나 양을 해쳐! 아니, 왜 해치겠어?! 무라츠바키 군, 미쳤어? 미친 거지?"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흠…. 그 표정이 연기라면 정말 소름돋는 실력입니다. 어차피 지금부터 그 실체를 철저하게 까발릴 생각이지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는 내내 입을 가리던 부채를 거둬들이고 뒷짐을 졌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살인게임이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지금부터 10분. 단 10분 내에 당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보이죠. '초고교급 변호사의 명예를 걸고', 말이죠."


타키모리 유미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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