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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를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발언자의 신원을 표기하기 위해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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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 ch.2 비일상편
<까마귀가 싸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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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초고교급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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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가 수집한 증거 목록



<모노사메 파일 #1}
시체 발견 장소는 부둣가, 사인은 목뼈 골절.
유난히 성의없는 내용이다.


<손상된 안면}
시체의 얼굴은 보존상태를 감안하더라도 심하게 훼손되어있다.


<쇠사슬}
시체의 다리에 묶여있던 무거운 쇠사슬.


<인상착의}
시신의 머리카락과 인상착의를 봤을 때 시신의 주인은 분명히….


<드라이아이스 창고}
다량의 드라이아이스와 카트가 구비된 창고.
잠금장치가 고장난 것으로 보아 누군가 다녀간 것 같다.


<이나모리의 증언}
누군가 낚싯배와 조각배를 타고 나간 흔적이 있다.


<떠밀려온 카트}
해안가에 밀려온 카트. 냉동창고에 있는 것과 같은 물건으로 보인다.


<의미 없는 등대?}
굳게 잠겨있는 등대.
아무런 힌트도 찾지 못해 의미를 알기 어려운데….


<연구교실의 쪽지}
토미하레 소루의 연구교실에서 발견된 쪽지.
'항구에서 봐요…. 당신만큼이나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보여줄게요…. 반드시 혼자…'


<개인실의 쪽지}
인쇄했다고 해도 믿을만큼 바른 글씨로 쓰인 글씨. 그에 비해 그림실력은 형편없다.
'22시까진 돌아올게요.
(\(\     
(  -.- )
O_(")(")     '


<CD 플레이어}
토미하레 소루의 연구교실에 있던 물건. 구닥다리지만 볼륨은 꽤 큰 편이다. 구비된 CD는 토미하레 소루의 연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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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츠바키 마사오미는 내내 입을 가리던 부채를 거둬들이고 뒷짐을 졌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살인게임이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지금부터 10분. 단 10분 내에 당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보이겠습니다. '초고교급 변호사의 명예를 걸고', 말이죠."




-



머뭇거리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학급재판의 물꼬를 틀려 했던 타키모리 유미코.

하지만 연달은 말실수로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초고교급 변호사인 무라츠바키 마사오미가 그녀를 공개적으로 지목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물론 위기도 어디까지나 타키모리에게 위기지, 저 불꽃 머리칼이 슥삭 학급재판을 해치워준다면 '나'로서는 누워서 떡먹기. 손 안대고 코 풀기. 그저 고맙기만 할 따름이다.

이제 초고교급 변호사가 어떻게 이름값을 하는지나 지켜볼까 싶은 심산이었는데….



쇼코라 치에: "헤에이! 뾰족머리!"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뾰족머리라는 건 저를 칭하는 말입니까? 초고교급 파티시에, 쇼코라 치에 양."

쇼코라 치에: "파티시에가 아니라 초고교급 JK다, 이 똥멍청아! 가만히 있던 타키모리 언니를 왜 괴롭히는 거야?! 언니가 얼마나 상냥하고 좋은 사람인줄 모르지? 너 같은 게 마음대로 지껄여도 될 사람이 아니란 말야!"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대뜸 고함을 지르며 난입한 쇼코라. 이기적이고 남을 이용해먹으려는 성격의 꼬맹이가 답지않게 타키모리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녀 뿐이 아니었다.


아리스 윈터우즈: "무, 무라츠 씨…. 저어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유미코 양이라고요? 살인 같은 걸 할 리가 없잖아요?"

키쇼: "아앗! 안 됨다! 우리 타키모리 양은 건들면 안 됨다! 여기서 미형 여캐가 더 죽으면 안된단 말임다! 독자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슴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우성과 질타 섞인 목소리는 하나같이 무라츠바키 마사오미를 헐뜯거나 타키모리 유미코를 변호하고 있었다.

상담실을 운영했다는 건 알지만 그동안 이렇게까지 인망을 잘 구축해두었을 줄은 몰랐는데.

타키모리를 두둔하고픈 마음이 드는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실낱같지만 마음속에서 죄책감 비스무리한 어떤 감정이 자꾸 쿡쿡 찌르듯 존재감을 과시하는게, 영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던 것이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이 어색한 반응은…. 흐음. 그동안 재미있는 장난을 많이도 쳐 두셨군요, 타키모리 씨?"

타키모리 유미코: "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무라츠바키 군, 클래스메이트들도 저렇게 말하잖아? 농담하는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두지 않을래…? 방해되니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그만두다니, 그럴리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당신 입으로 죄를 실토하게 만들겠다고. 검사나 경찰, 탐정에 비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변호사입니다. 고작 일반 시민에 불과한 당신 정도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는 또다시 부채로 입을 가리며 본격적인 공격의 낌새를 드러냈다. 마치 꼬리깃을 펼치며 적을 위협하는 희귀종 새처럼.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그럼 제가 타키모리 씨를 의심하게 된 경위부터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집중해주십시오. 타키모리 유미코 씨. 당신은 피해자인 카미나기 한나와 생전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지요?"

타키모리 유미코: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과 '가까운 관계'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한나 양도 말야. 누구와는 달리 규합과 단결을 위해 노력했으니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그런가요? 하지만 지난 학급재판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모습은 제 눈에는 조금 더 특별해 보였습니다만. 물론 카미나기 씨에게는 아야키치 씨라는, 더 소중한 '진짜' 친구가 있지만. 당신에게도 약간 정도는 마음의 문을 연 것 같았습니다."

타키모리 유미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저는 유인책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타키모리 씨."

이시미네 칸: "유인책…?"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일반인들에게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라고 하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상천외한 트릭의 정체를 파헤치려고 한다던지, 어떻게든 증언의 거짓말을 간파해내서 틈을 찾으려 한다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얄팍한 유도 심문으로 범인의 실수를 유도해낸다던지.

하지만 범행이라는 건 생각보다 허점이 많고 깨지기 쉬운 결정체라, 중요해보이는 부분을 벗어나 정 반대편에서 약점을 찌르면 아주 쉽게 무너집니다.

이를테면 어떻게 범인과 피해자가 사건 현장에서 만나게 된 경위. 이 점에 대해서 고민해본다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지요.

쇼코라 양. 카미나기 양의 시체가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쇼코라 치에: "에? 나…? 잠깐만. 이 불똥머리가 누굴 바보로 보나! 카미나기 언니의 시체는 부둣가에 있었잖아! 부둣가의 쓰레기더미에 깔려서!"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그렇습니다. 부둣가…. 아시다시피 이 부둣가라는 장소,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모노쿠마 호텔과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어두운데다 안개까지 낀 구불구불한 거리를 아무리 빨리 주파한다 해도 20분은 족히 걸리겠죠. 당사자가 여성, 더군다나 체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편이라면 호텔과 부둣가 간의 이동 시간은 더욱 늘어납니다.

이 유의미한 거리에는 분명 어떠한 필연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이를테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범행 장소로 불러냈다, 라던지.

열 명이 넘어가는 목격자들이 배회하는 모노쿠마 호텔보다는 아무래도 야외가 범행을 저지르기엔 적합하다고 생각했겠죠. 범인은."

타노 나타타: "잠깐. 변호사 씨. 그 논리에는 허점이 있는 것 같은데? 아하핫."



초고교급 실험부원, 타노 나타타가 대뜸 끼어들었다.

지난 학급재판에서 입꾹닫을 시전하고 낮잠이나 자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는 건, 뭔가 짐작가는 바가 있다는 걸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미동도 하지 않던 무라츠바키의 미간 주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타노 나타타: "피해자가 부둣가에서 발견된 건 어디까지나 쓰레기 수거선이 시체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잡아당겼기 때문이지, 피해자가 그곳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은 아니라구?"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좋은 지적입니다. 물론, 부둣가는 어디까지나 시체가 발견된 장소이지 피해자가 살해당한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체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상,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큰 의미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만."

타노 나타타: "아니이? 차이가 있을 수도? 이히힛."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타노 나타타: "변호사 씨. 말을 두루뭉술하게 하고 있지만 결국 해변가나 그 주변에서 피해자가 살해당했고, 범인이 그곳까지 피해자를 유인해냈을 거란 뜻이잖아? 응? 맞지? 하지만 피해자가 호텔 인근에서 살해당한 뒤 부둣가까지 옮겨졌거나, 혹은 우연히 부둣가를 거닐던 중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어째서 배제하는 걸까? 응?"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타노 나타타: "마침 피해자의 사인은 목뼈의 골절상…. 출혈 등의 흔적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시체를 수송하기 좋은 조건이야. 게다가 여자애잖아? 힘 좋은 남학생이나 이토리 쨩이라면 사체를 들쳐업고도 그 정도 거리는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걸?"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흥,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그 정도 의문점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타타 씨."

타노 나타타: "어머. 타노라고 불러주지 않을래? 타노는 성이 더 귀엽…."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타타라고 부르는 것이고."

타노 나타타: "……흐응? 뭐야? 이 묘한 적대감? 아핫?"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나타타 씨는 피해자가 호텔 근처에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만, 사실 그건 고려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추론입니다. 시체를 옮기는 기회비용 대비 상응하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죠.

창문이 모조리 밀폐되어있는 천공 모노쿠마 호텔은 출구와 입구가 하나 뿐인, 어떻게 보면 하나의 커다란 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 내부에도, 방 외부에도 그 방을 드나드는 출입자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있는 아주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 섣불리 로비 층을 지나 호텔을 빠져나가려 하면 높은 확률로 외통수에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호텔 내부에는 또다른 방들이 아주 많습니다. 도서관처럼 복잡한 구조의 시설도 있으며 트릭을 준비하기에 알맞은 재료들도 몽땅 호텔 창고에 구비되어 있지요. 당신이라면. 당신이 호텔에서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시체를 억지로 운반해 밖으로 꺼내겠습니까, 혹은 호텔 안에서 어떻게든 공작을 마치고 시체가 발견되길 기다렸겠습니까?"

타노 나타타: "아하핫~ 글쎄. 실행하기엔 너무 위험하니 배제한다라~ 타노는 뼛속까지 실험 체질이다 보니 그런 탁상공론은 별로라서 말이야. 한 번 직접 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쯧…. 정신병자와는 말이 안 통하려니."

키쇼: "흐으음…. 뭐, 일단 여기까진 그렇게 특별한 추리는 아닌 것 같슴다. 피해자를 밖으로 유인한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하지만 그게 타키모리 양과 무슨 관계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슴다. 역시 억지 아님까? 타키 양의 말대로 타키 양 밖에도 카미나기 양을 꾀어낼 사람은 많슴다. 아야키치 씨라던지?"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물론 타키모리 씨와 관계가 있고 말고요."


타노와의 짧은 대결을 무사히 넘긴 무라츠바키는 간결하게 단정지었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타키모리 유미코는 이미 '상담'이라는 구실을 이용해 여러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 쯤은 그 자리에 불려갔겠지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은밀한 곳에서 단 둘이, 어떻게 생각해도 살인게임에서 받아들이기엔 거북한 조건입니다만…. 모두가 그 제의를 수락한 건 한 가지 안전장치가 있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키쇼: "안전장치 말임까? 으음…. 무슨 롤러코스터임까? 안전장치가 다 있고. 이해할 수 없슴다."

아리스 윈터우즈: "어…. 저는 어쩐지 정답을 알 것 같은데여…."

키쇼: "엑. 아리스 양이 말임까?! 거짓말임다! 혼자서만 바보 라인을 탈출하려는 생각임까?!"

아리스 윈터우즈: "바, 바보 라인에 가입한 적은 없어요오…! 그리고 제가 똑똑해서 알아낸 것도 아니고요…. 그냥 제가 그 역할을 맡아서 아는 것 뿐이에요…."


아리스 윈터우즈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칭얼거렸다.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참 신기한 외모다.


아리스 윈터우즈: "유미코 양의 상담 기록과 앞으로의 시간표, 전부 저에게도 사전에 전달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요. '안전 장치'라는 건 그걸 말하시는 거죠…? 아, 아닌가?"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아니요, 윈터우즈 씨.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도 그 내담 예정자 목록을 가지고 있으신지?"

아리스 윈터우즈: "아, 네. 그게, 잠시만요. 아… 어디있더라…. 아! 있네요! 와아, 다행이다."


잠깐 새에 수심에 찬 얼굴과 해맑은 미소를 오가는 아리스의 감정선은 역시 어린아이 같아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아리스 윈터우즈: "어디보자…. 네. 오늘과 그 이후의 상담 예정자들의 이름은 이 메모지에 모두 적혀있어요. 보여드릴까요?"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아니오…. 대신 최근 날짜에서 카미나기 한나의 이름을 찾아주십시오. 제 추리가 맞다면 분명 어제, 대략 사건 발생 추정 시각에 그녀의 이름이 있을 겁니다."

아리스 윈터우즈: "음…. 사건 발생 추정 시각이라는 건…?"

후네즈 신지: "…물론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던 저녁 시간대 이후를 말하는 거겠지?"

아리스 윈터우즈: "아, 그렇군요…. 어디…. 아, 있어요!"


아리스는 과장스럽게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씨를 가리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아리스 윈터우즈: "어제 저녁 여섯 시 삼십 분…. 이건가요?"

타키모리 유미코: "아리스! 저딴 녀석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도 되잖아!"

아리스 윈터우즈: "에? 그, 그, 그게…. 뭔가 쓸모가 생겼다니 기분이 들떠서…. 죄송해요…."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성실한 증인을 겁박하는 짓은 그만두시죠, 타키모리 씨."

타키모리 유미코: "…."



모노쿠마 뱅글의 시각으로 어제 저녁 여섯시 삼십 분.

타키모리가 그 시각에 카미나기를 면담하기로 되어있었다는 건 분명 어색한 사실이다.

만약 카미나기가 면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누구보다 먼저 그녀의 실종을 눈치챘어야 할텐데. 타키모리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카미나기와 면담을 제대로 진행했다면, 그것도 한편으론 어색하다. 오후 여덟 시 까진 돌아오겠다던 카미나기가 타키모리를 만난 이후로 연기처럼 사라진 거니까. 결국엔 타키모리가 수상하다는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상담 기록의 존재 정도야 '나'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무라츠바키 녀석은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추론해낸 걸까?



타키모리 유미코: "…맞아. 원래 그 시간엔 한나 양과 상담을 하기로 되어있었지. 하지만 그뿐이야. 어제 저녁 나는 한나를 만나지 못했어. 한나 양은… 상담실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오호. 내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라? 그렇다면 그동안 당신은 뭘 했습니까?"

타키모리 유미코: "뭐… 뭐?"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내담 예정자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잖습니까? 그 남는 시간에 혼자서 무얼 했냐는 말입니다. 청소라도 했습니까?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알릴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까? 왜 지금껏 카미나기 씨를 만나지 못했다는 걸 숨긴 거죠?"

타키모리 유미코: "그, 그게…. 실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맹공을 당하는 타키모리 유미코.

하얗게 질린 얼굴과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하는 눈동자가 정말이지 작고 약해보였다.

평범한 소녀와 초고교급 변호사의 대결.

진위여부가 어떻든, 전제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 아니었을까?


타키모리 유미코: "실은…. 그게, 말 실수를…."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실은 만난겠죠. 카미나기 한나를. 피해자를. 상담이 예정되어있던 그 저녁 시간에 말입니다."

타키모리 유미코: "…!"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애초부터 불보듯 뻔했습니다. 초고교급 보디가드, 아자부 이토리 씨의 목격 증언이 있었으니까. 카미나기 씨를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말에 따르면 카미나기 씨와 저녁 쯤에 '연구교실 플로어의 복도'에서 마주쳤다고 하더군요. 당신 밖엔 없잖습니까? 그 시간에 연구교실 층에 있었으며, 카미나기 씨가 굳이 만나러 갈 사람은."

타키모리 유미코: "여, 연구교실이라면 쇼코라 양의 베이커리도 있잖아! 토미하레 군의 연주실도 있어!"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억지를 부리는 것보단 사실을 인정하고 합당한 변명을 내놓는 편이 변호에 유리할 겁니다, 타키모리 씨. 이건 '진심으로 하는 충고'니까 잘 새겨들으십시오."

타키모리 유미코: "……!"

타키모리 유미코: "……."

타키모리 유미코: "……하아. 젠장. 어쩔 수 없네."

타키모리 유미코: "맞아. 무라츠바키 군의 말대로야. 나는… 어제 한나 양을 만났어. 내 상담실에서, 단 둘이."



줄곧 부인해왔던 사실을 겨우 시인하는 타키모리 유미코.

술렁거림과 침묵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퍼져나가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카미나기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타키모리 유미코라면, 어쩌면 살인 과정에 대한 논의는 더이상 이어나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수세에 몰린 타키모리는 눈물까지 보이며 겨우 변명을 이어나간다.



타키모리 유미코: "거짓말해서 미안해. 하지만…."

타키모리 유미코: "하지만 그건 정말로 단순한 상담이었어! 한나 양이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상담이 평소보다 일찍 끝났을 뿐, 그 뒤론 나도 한나 양이 어디서 뭘 했는지 몰라!"

이시미네 칸: "흥. 지금까지 거짓말 해놓고 모른다고 시침떼기입니까? 타키모리 씨, 싫어하긴 했지만 살인자로는 안 봤는데."

타키모리 유미코: "무서워서 그랬던 것 뿐이야. 보통 마지막 목격자가 의심받으니까…! 너희들에게 의심받기가 싫어서, 그래서 입을 닫고 있었을 뿐이라고!"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예, 그 말씀대로. 경찰이나 탐정의 수사에서 피해자의 최종 목격자는 웬만해선 최유력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지요. 거기엔 다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타키모리 씨."

타키모리 유미코: "!"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당신, 상담을 위해 찾아온 카미나기 씨를 부둣가로 데려간 건 아닙니까? 산책이나 하자는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면서 말이죠."

타키모리 유미코: "절대로 아니야! 한나 양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얄팍한 수가 통할 리 없잖아! 어떤 바보가 볼거리라곤 안개밖에 없는 부둣가에서 산책을 하자는 말을 믿겠어! 게다가 한나 양은 며칠 전 호텔 복도에서 괴한의 습격까지 받았어. 조심성 없이 따라나설 리가 없잖아!"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제 말을 듣기는 한 겁니까? 그런 얄팍한 수가 통하도록 미리 신뢰를 다져놓은 당신이니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말이 되든 안 되든, 그 조심성 많은 카미나기 한나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습니다!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부둣가에서요! 이걸 설명할 무슨 다른 추측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타키모리 유미코: "어제 한나 양은 어딘가 상태가 안좋아보였어. 자꾸만 혼잣말을 하고, 상담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목맴사잖아! 자살밖에 더 있겠어?!"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자살이 아니라는 건 이미 모노사메 파일로 입증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십시오, 타키모리 유미코! 어제 카미나기 한나와 만나서 무얼 했습니까!"

타키모리 유미코: "나는 아니라니까! 제발! 부탁이니까 믿어줘!"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감정에 호소라니, 웃기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세요. 당신의 파트너, 토미하레 소루는 어디 있습니까? 그와 함께 카미나기 한나의 목을 비틀어 죽였습니까? 그 불쌍한 피해자를?!"

타키모리 유미코: "제발, 제발….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왜 나한테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증인, 심문에 성실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자부 이토리: "어이. 거기까지."





타키모리 유미코: "…아?"

무리츠바키 마사오미: "…?"

"…?"

아자부 이토리: "헛소리는 거기까지만 해, 뾰족머리 표절 변호사. 콩까는 소릴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반전이었다.

말린 콩처럼 쪼그라들어가던 타키모리 유미코를 무라츠바키 마사오미가 거의 다 조리해가던 참이었다.

차갑게 내리앉는 성조와 함께 그 둘의 논쟁에 난입한 사람의 이름은 아자부 이토리, 초고교급 보디가드.

새카만 머리칼에 새하얀 피부를 지닌 그녀가,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살짝 옆으로 치우며 비장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독일제 탱크같던 무라츠바키 마사오미의 기세도 분명 그녀의 위협적인 기운에 주춤했으리라.

이대로 순조롭게만 흘러가면 좋았을 것을. 이토리 쨩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아자부 이토리… 씨? 왜 그러시죠? 이제 범인을 거의 다 구워삶기 직전이었습니다만."

아자부 이토리: "지랄하지마.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하아. 고교생이란 사람들이 입버릇이 하나같이 괴멸적이군…."

아자부 이토리: "아니, 나도 어지간하면 입 닫고 있으려고 했거든? 아직 머릿속으로 범인이 누군지 답을 찾지도 못했고, 괜히 나섰다가 가진 패를 까발려버리기도 싫고. 그런데 보다보니 도무지 답답해서 못 참겠다. 뭔 놈의 전개가, 고구마가 있으면 사이다도 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아자부 이토리: "이봐.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솔직히 털어놔봐. 너 변호사 아니지? 뭐 알고보면 법정 서기라던지, 아니면 변호사 전용 커피 셔틀이라던지. 그런 재능 아니야? 아니면 너였냐? 초고교급 JK?"

쇼코라 치에: "그건 치에라니까!"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제 추리에 어긋난 부분이 있으면 제대로 지적을 하시지요, 아자부 씨. 물론 그런 게 있을 리 없습니다만."

아자부 이토리: "하! 근본부터 글러먹은 추리에 지적은 니미. 너는 밥을 새카맣게 태웠으면 갖다버려야지 누룽지 남겨먹을 궁리나 하냐? 그지새끼도 아니고."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키쇼: "아자부 양 마, 말빨이… 전문가 말빨임다…!"

시가라토 유즈: "……마음에 안 들어."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이해할 수 없군요. '근본부터 글러먹었다'? 피해자 카미나기 한나는 부둣가 근처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범인에겐 그녀를 살해 장소까지 유도해낼 필요가 있었고,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그녀와 상담 일정이 잡혀있었던데다가 실제로 만나기까지 한 타키모리 유미코 뿐입니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타키모리 씨는 아직까지도 그날 피해자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숨기고 있어요! 이래도 타키모리 유미코가 범인이 아니라는 겁니까!"

아자부 이토리: "거봐. 이번에도 '근본'부터 틀렸잖아. 머저리."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아자부 이토리: "추리의 근본. 즉 시작점. '피해자 카미나기 한나는 부둣가 근처에서 살해되었다'…라는 부분 말이야."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하아…. 분명히 아까도 비슷한 지적이 들어와서 설명했을텐데요. 피해자가 살해당한 장소와 발견 장소가 인접해있을 거라는 건."

아자부 이토리: "아니, 그거 말고."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허?"

아자부 이토리: "피해자가 부두에서 살해되었건 서커스장에서 살해되었건, 그딴 건 난 관심 없어. 네 추리에서 정말로 글러먹은 건 그것보다도 더 근본적인…."

아자부 이토리: "바로 피해자의 이름이 '카미나기 한나'라는 부분부터니까."





"……."

타키모리 유미코: "……."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


…… ……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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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모노쿠마 뱅글? 어째서 이게 여전히 손목에…."



어둠 속에서 온 사방을,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더듬어 만져보던 카미나기의 손에 걸린 어색한 금속과 플라스틱의 감촉.

신체와 거의 일체화되어 손목 깊숙히 결합되어있는 그것은 분명 그녀가 모노쿠마 뱅글이라고 불러왔던 물건이 분명했다.

사용법은 물론, 기억하고 있다.

어둠 속이지만 손에 익은 감각을 이용해 손목에 두른 물건을 만지작거리자, 이윽고 희미한 전깃불이 처음으로 어둠 속에 빛을 밝혔다.

그렇게 밝은 빛도 아니거늘 다른 이유로 눈이 찌푸려졌다.

역시 모노쿠마 뱅글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이 아직도 남아았다는 건,

카미나기는 역시나 한가지 의미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이곳이 여전히 가상현실 속임은 물론, 자신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는 의미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머리가 바쁘게 돌았다.

살해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금되었다.

모노쿠마 뱅글로 시간을 확인했다. 기절하고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는 걸 알아내자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범인은 무슨 생각일까. 어째서 아직 자신을 죽이지 않은 걸까. 어째서 이런 칠흑 속에 가둬놓기만 한 걸까.

굶겨죽이려는 걸까?

아니면 나중에라도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올까?

그보다, 아직 가상현실 속이라면, 내가 갇혀있는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앗, 알몸…."


불빛이 생기자 그간 무감각하게 여겼던 것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속옷까지 싹 벗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 구속을 벗어내느라 성한 곳이 없는 손 발목. 잔뜩 까진 무릎과 손바닥. 상처는 인지한 순간부터 더 아파오기 시작한다고,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쓰라림, 그리고 추위에 카미나기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뭔가 걸칠 만한 거라도 없을까….

그 칠흑을 제대로 비추기엔 밝기가 충분치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모노쿠마 패드를 앞세워 나아갔다.

그렇게 희미한 빛에 의지해 어둠 속을 헤매길 또 잠시.

바닥에 떨어져 살짝 부풀어오른 실루엣을 발견한 카미나기는 직감적으로 그게 벗어놓은 옷가지라는 걸 파악했다.

얇은 천 재질에 어두워서 구별이 잘 안되지만 감색 빛이 도는 세일러복.

옷을 입어야겠다는 행동보다 먼저 든 생각은, 어쩐지 이 옷의 주인을 알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초고교급 현악부원 토미하레 소루의 얇은 옷가지를 하나하나 몸에 걸쳐나가며, 카미나기 한나는 생각보다 옷 사이즈가 몸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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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부 이토리: "피해자는 토끼녀가 아니야.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백날 천날 누굴 붙잡고 떠들어봤자 해답이 나올 리가 없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으로 장내를 충격에 빠뜨린 아자부 이토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니컬한 표정으로 어딘가의 바닥을 노려다보고 있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 물어뜯으며 싸워대던 무라츠바키와 타키모리도, 학급재판보단 편가르기 놀이를 하며 떠들어대던 병풍들도 모두 단체로 침묵에 빠졌다.

그간 손놓고 방관만 하던 '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대체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당신, 그 물 머금은 여성의 시체를 보지 못한 겁니까? 그건 토론의 여지 없이 분명 카미나기 한나였습니다!"

아자부 이토리: "시체? 봤지. 누구보다도 자세하게, 가까운 곳에서.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이야. 그 시체는 카미나기 한나가 아냐. 절대로."

"…이토리 쨩? 제대로 설명해줄래? 그게 무슨 소리일까? 내 등신같은 파트너가 살아있다니?"

아야키치 슌: "……한나는 등신이 아니야. 카라스야마 류이치. 물론, 그 목이 부러진 시체도 한나가 아니고."

"……."



시체를 발견한 이후 말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벙어리가 되었던 아야키치 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치 코카서스 장수풍뎅이를 생으로 씹어먹은 것처럼 불편해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그 눈에는 분명 활활 타오르는 어떤 영혼.

투지가 담겨있었다.



아야키치 슌: "한나는 죽지 않았어. 아니, 적어도 아직까지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쓰레기 수거선에서 발견된 그 끔찍한 시체의 진짜 이름은, 초고교급 현악부원, 토미하레 소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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