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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를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발언자의 신원을 표기하기 위해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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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 ch.2 비일상편
<까마귀가 싸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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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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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갔다.

난로 옆으로는 커다란 크기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추상화가 걸려있다. 매일 이런 그림 앞에서 잠자리에 들어야한다니, 이건 이것대로 고문이다.

방을 장식하는 난해한 센스의 까마귀와 토끼 박제도 그때로선 그다지 시선이 가지 않았다.

'나'의 온 시선과 관심은 그녀에게 쏠려있었기에.




"…정말로 그게 전부에요?"




생전 토미하레 소루가 입었던 세라복 위에 얇은 담요를 덮은 카미나기가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대신 얇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대략적인 상태를 알려주었다.

마취제를 흡입하고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등대에서 두 나절 가량이나 갇혀있었다. 탈진해 쓰러지는게 자연스러운데도 고집스럽게 버티는 모습이 참 알면 알수록 지독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카미나기 한나: "학급재판 막바지에 타키 양이 다른 분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고, 때마침 제가 보낸 구조 신호 덕에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렸다고요…."


"아아, 그래. 덕분에 투표는 순조롭게 타키모리의 패배로 끝났지. 뭐, 아주 마찰이 없던 건 아니지만."


카미나기 한나: "…타키 양이 토미 군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저를…."


"아무리 거짓말쟁이라지만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하진 않아. 정 믿기지 않으면 네 친구놈에게 달려가 물어보던가."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저은 흰토끼는 김이 모락모락 피는 커피를 살짝 홀짝였다. 엄청 쓸 텐데, 역시 미각이 멀쩡하지 않은 녀석이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카미나기 한나: "됐어요. 슌도 이토리 양도 학급재판을 치러내느라 피곤할텐데. 더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


"글쎄. 아야키치 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




이미 친구의 상태를 보기 위해 찾아온 아야키치를 카미나기가 몇번의 거절로 단호하게 쫓아낸 뒤였다.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네게 신경쓰이는 일이 있어서 만남을 피하는 거겠지."


카미나기 한나: "저 거짓말 못해요.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아무렴. 하지만 진심과 진실은 고작 한 글자 달라도 의미에는 꽤 많은 차이가 있거든. 진심이란 녀석은 알아차리기도 전에 타인에게 들켜버리는 법이지."


카미나기 한나: "…조용히 좀 해줘요. 혼란스러우니까."


"답지않게 힘빠지는 목소리네. 평소라면 '조용히 하세요.'하고 딱 잘라 말했을텐데."


카미나기 한나: "…아는 척 하지 말아주세요."


"뭐야?"


카미나기 한나: "제 '평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서류 몇 장 읽었다고 잘 안다는 듯 떠들어대지 말아주시겠어요? …불쾌해요."


"……."




…기묘한 적대감이다.

전에도 카미나기가 적의나 혐오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낸 적은 여러번 있지만, 이번엔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가시가 돋혔다…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알겠어. 괜히 나불거렸네. 그래서, 더 묻고 싶은 건?"


카미나기 한나: "등대 입구는 어떻게 연 거에요? 두 가지 자물쇠로 잠겨있었잖아요. 누가, 어떻게 연 거죠?"


"야야키치 슌이 비밀번호를 풀었어. 13425 였던가."


카미나기 한나: "풀었다니, 힌트라도 있었던 건가요?"


"그래. 두 자물쇠 각각의 힌트는 토미하레 소루와 타키모리 유미코의 연구교실에 숨겨져 있었는데, 열쇠는 타키모리가 버려서 못 찾았지만 토미하레 소루 쪽에서 수확이 있었던 모양이야. '이 등대는 오로지 너를 위해 지었으니 네 이름을 따서 비밀번호를 정했다.'라는 의미불명의 쪽지를 찾았거든."


카미나기 한나: "…도 미 파 레 솔… 그래서 13425군요. 하지만 쪽지의 내용은 여전히 오묘하네요. 토미하레 군을 위해 지었다니, 대체 누가? 어째서? 언제?"


"가상현실 따위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마.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질 소모성 떡밥일 뿐이야."

카미나기 한나: "……."




그 말을 듣고 흘깃 비스듬하게 올려다보는 카미나기의 그늘진 얼굴엔 어째 원망하는 듯한 어두움이 서려있었다.

무섭다. 그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지 예상할 수가 없어서.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기에,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근질거리는 입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생각엔 토미하레 소루는 타살이야. 타키모리가 직접 죽였든, 자살하도록 조종을 했든 둘 중 하나."


카미나기 한나: "어째서 그렇게…?"


"토미하레 소루의 시신을 즉각 유기하지 않고 냉동 창고에 보관했으니까 처음부터 학급재판을 염두에 두고 벌인 짓이 분명해. 당사자가 죽었으니 사실을 확인할 방법도 없지만…."

"…소름끼치는 여자야. 재능을 무기로 쓰다니, 자부심이란건 눈곱만큼도 없는 건가. 상담사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내담자의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떠벌리고…."


카미나기 한나: "…까마귀 씨, 방금 그 얘기…. 타키모리 양에게도 했어요?"


"?"


카미나기 한나: "타키모리 양이 토미하레 군을 자살하게 조종했다는 말. 타키 양에게도 했냐고요."


"…했는데? 그 여자의 정신 공격 탓에 수세에 몰려서, 마지막 반항이랍시고 한번 내질러봤지.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카미나기 한나: "……."


"……."


카미나기 한나: "……."


"…하아, 씨. 또 뭐가 문젠데? 그 무미건조한 표정,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건 알고 있냐?"


카미나기 한나: "…사과하라는 말을 하려다가 생각을 고쳤어요. 어찌됐든 타키모리 양이 모두를 희생시키려 한 건 사실이니까, 아무래도 그건 못할 소리겠죠. …하지만 타키모리 양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최저의 인간은 아니에요."



……뭔 소리야.



"…흰토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타키모리의 행동은 이유를 불문하고 선을 넘었어. 농담으로라도 감싸고 돌진 말라고."


카미나기 한나: "카라스야마 씨…."


"조금 위태위태하긴 했지만 학급재판도 우리가 이겼고, 타키모리 유미코도 이미 처형당했어. 이제 와서 그러면 찝찝한 기분이 좀 나아지기라도 하나? 그 여자는 살인자야! 토미하레 소루를 죽였고 다른 모두들마저 몰살시키려했어. 그 벌을 받은 거라고."


카미나기 한나: "……절 죽이지 않았잖아요."


"……!"


카미나기 한나: "타키모리 유미코는 절 죽이지 않았다고요. 등대에 가둬놓기만 했죠."


"…그건."


카미나기 한나: "타키모리 양도 그랬다면서요. 저를 살려둘 이유가 어디있겠냐고. 그 말이 맞아요. 누군가 제가 갇힌 위치를 알아채기라도 하면 그대로 모든 게 끝장이었겠죠. 하지만 타키모리 양은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갈아입을 옷가지까지 고이 접어서 등대 안에 남겨뒀죠."


"그건, 그건 그냥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것 뿐이겠지.
 그런 여자잖아, 타키모리 유미코는."


카미나기 한나: "맞아요. 손을 더럽히기 싫었겠죠. 아마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더라면 평생 깨끗하게 잘 먹고 잘 살았을 거에요."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카미나기 한나: "타키모리 양이 토미하레 군을 죽게 만든 건, 아마 맞을 거에요."


"뭐라고?"


카미나기 한나: "하지만... 거기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요. 토미하레 군을 자살하게 만들어서라도 막아야했던 이유가. ...당신이 말했죠? 화려한 최후에 집착하는 남자가 고작 목을 매달고 죽을 리가 없다고. 그 말대로애요. 토미하레 소루는 자살할 생각따윈 없었어요. 대신 살인을 저지르고 학급재판에서 범인으로서 검거당해, 그 말마따나 '아름다운 최후'를 맞으려고 했죠."


"……."


카미나기 한나: "등대에서 찾은 토미하레 군의 일기장에 적혀있던 내용이에요. 타키모리 양이 저를 살려둔 건 아마 그 일기장을 찾아주길 바랬던 거겠죠. 자신이 패배하게 되더라도 누군가는 자기 사정을 알아주길 바랬던 거에요."


카미나기 한나: "...카라스 씨. 제가 하고싶은 말이 뭐냐고 하셨죠. 제가 하고싶은 말은, 나쁜 건 사람이 아닌 상황이라는 거에요. 테러범들이 우리 목숨줄을 쥐고 있는 상황. 살인게임을 강요당하는 상황. 파트너의 자살에 대해 목숨으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 최악에 최악만이 겹친 극한의 불합리가 아니었다면 타키모리 양은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죠."


"아하…. 그러니까 지금, 내게 죄책감이라도 느끼라는 건가?"


카미나기 한나: "무슨….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아니긴 무슨. 살인도 저지르지 않은 여자를 투표로 처형시키고, 그 대가로 살아남았으니 죄책감을 느껴야한다는 거 아냐? 맞네! 맞아! 그 대단하신 카지노 딜러 카미나기 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옳을 수밖에."


카미나기 한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라면 대체 뭔데? 아까부터 계속 남 신경을 벅벅 긁어대는 이유가 뭐냐고. 대체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거냐고."


카미나기 한나: "꼭 누군가를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


카미나기 한나: "타키모리 양도, 여러분도, 그리고 저도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을 뿐이에요. 누구의 탓도, 누구를 비난할 일도 아니라고요! 타키모리 양을 악마로 만들 필요도 없고 성녀로 미화할 이유도 없어요. 스스로를 탓할 이유는 더더욱 없고요!

당신의 말대로에요. 타키 양은 죽었고, 저흰 살아남았죠.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마세요. …그게 모노사메가 원하는 것이라고요. 저들이 원하는대로 놀아나지 마요. 침착하게. 머리를 식히고 가슴은 뜨겁게. 속내를 숨기고 비열하고 냉철하게. …그게게임의 승리를 향한 지름길이에요.

도박사의 심장을 가지세요, 카라스야마 씨. 당신이 진정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



그 누구도, 탓할 필요는 없다라.


그 말이 옳아. 카미나기.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살 수는 없어.


누구나 너처럼 살 수는 없어.


'나' 같은 간악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원망할 대상이 필요해.


거리감이 깊어진다.


추악한 까마귀와 새하얀 달의 공주 사이엔 이 은하수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게 남았는데, 안 듣는 걸 추천하지만…. 오만한 너는 반드시 모든 진실을 알아야한다고 고집을 피우겠지?"


카미나기 한나: "물론이죠."


"그 둘의 처형식에 관해서야. 아직 듣고싶어?"


카미나기 한나: "……."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녀는 이윽고 고갤 끄덕였다.



카미나기 한나: "부탁드려요."


"……."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가까운 소파에 등을 돌려 앉았다.



"투표가 끝난 뒤에 타키모리는 한동안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기계같은 모노사메도 그녀에게 유언 남길 시간 정도는 허용했고, 이곳저곳에서 비난과 원망, 혹은 미련 섞인 말들이 쏟아졌지만 타키모리는 그 어떤 대꾸도 삼갔지.

절망하지도, 현실을 부정하지도,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았어.

그저 눈을 꾹 감고, 마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읽던 책에 집중을 못하는 사람처럼 그 모든 아우성을 굳센 침묵으로 받아냈어.

처음엔 봇물치던 목소리들도 점차 사그라들었고, 결국 모든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만큼이나 잔잔해졌을 때 쯤에서야 타키모리의 입술이 열렸지.



'별로 미안하지 않고, 저는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제멋대로 기대했다가 실망한 건 다 당신들 잘못이에요. 그럼 이만.'



...정말 어이없는 유언이었어.

죽음 앞에 의연하다, 혹은 허세를 부린다는 느낌은 아니었어. 떨고 있었으니까. 처형을 앞둔 공포인지 패배가 분해서인진 모르겠지만 멀리서도 보일만큼 파들파들 떨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그런 말을 했어.

당신들이라는 건 어쩐지, 눈앞의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게 몰려있는 상황에서도 온 진심으로 그 말을 쥐어짜내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그만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지.

결국 예고도 없이 모노쿠마 뱅글이 작동하며 타키모리는 힘없이 쓰러졌고, 처형이 시작됐어...."


-




-


모노사메: "초고교급 상담부원 타키모리 유미코를 위한 특별한 벌칙을 준비했다네!

벌칙, 스타트!"


-


...뭔가 이상한 걸 알겠는가?


그렇다.

모노사메의 처형 시작 멘트에 정작 처형을 받고싶어 목숨을 끊은 토미하레 소루의 이름은 쏙 빠져있었다.

그게 이 이야기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

모노사메가 현실세계의 영상을 비췄을 때, 그 새하얀 방에는 이미 온몸이 난도질당해 처참하게 죽어있는 토미하레 소루의 시신이 있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전혀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초라한 죽음... 그게 초고교급 현악부원 토미하레 소루의 최후였다.

모노사메는 살인게임을 어지럽히려는 시도를 감히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처형을 두려워하지 않는 싸이코, 기꺼이 처형을 받으려는 미친놈따위 존재해서는 안됐다.

모노사메는 플레이어와 시청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길 바랬다. 그래야만 더욱 필사적으로 희망을 붙잡을테니까. 그래야만 더욱 그 희망을 놓쳤을 때 보기좋게 절망할테니까.

그래야 살인게임이 살인게임다워질테니까.

카메라는 미동도 않는 소년의 시체에서 초점을 옮겨 같은 방에 있는 새하얀 책상과 의자. 구속된 채 강제로 앉혀져있는 듯한 오렌지빛 머리의 소녀.

타키모리 유미코가 저렇게 작은 여자였던가.

표정은 더없이 도도하고 쿨하지만 새파랗게 질린 안색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얗고 작은 두 손은 수갑이 채워진 채 책상 위에 고정되어서, 소녀는 그저 움찔움찔 어깨를 잡아당기는 시늉 정도의 저항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똑똑. 어딘가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소녀가 마주보고 있는 방향에서 벽과 구분도 가지 않는 하얀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흑백의 죄수복 차림에 온갖 구속구를 달고 있는 상어 머리의 인간. 쇠구슬을 질질 끌고 쇠사슬을 찰랑이면서 타키모리의 앞에 다가와 마주앉은 그는 어쩐지 초조해보이는 것처럼 몸을 꿈틀거린다.

아니다. 그건 초조함 같은 게 아니다.

설렘이다. 상어 머리의 괴인은 타키모리와의 만남에 분명히 얼굴을 붉히며 설레고 있었다.


《□◇●《●!!》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기계음에 타키모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상어 괴인의 옆에 말풍선이 나타나 그의 말을 번역한다.


《팬입니다!》

"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타키모리의 얼굴에서 공포감이 살짝 가셨다.


《초고교급 카운셀러, 타키모리 님의 SNS, 출연한 방송과 잡지 모두 구독해서 보고 있어요! 실제로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우울증과 강박증이 심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모두 나았어요!》

"에...."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멍하니 입을 벌리고만 있는 소녀.


《악수 한 번만 해도 될까요? 평생의 소원입니다!》


소녀는 무어라 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상어 괴인은 냅다 타키모리의 손을 붙잡고는 거칠게 흔들었다.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타키모리의 손을 잡은 괴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타키모리의 뒤를 지나쳐갔다.


《감사합니다! 이제 죽을 수 있겠어요!》


그러고선 무언가 무겁고 둔탁한 물체가 낙하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으직, 마치 음식물 쓰레기가 든 봉투가 터질 때 나는 소리가 그 둔탁한 소리에 섞여있었다.

뒤를 돌아볼 수 없는 타키모리.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아채기도 전에 다음 내담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도 상어 대가리였지만, 복장은 전혀 달라 평범한 학생이나 직장인 같았다.


《팬입니다. 깍지 한 번만 껴도 될까요?》


상어 인간은 깍지를 꼈다. 그리고 등 뒤로 사라졌다.

콰직.


《사인 한 번만...》

콰직.


《팬입니다. 같이 사진 한 장...》

콰직.


《선생님,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이.... 포옹 한 번 괜찮을까요?》

콰직.


다들 알 수 없는 소리, 알 수 없는 요구를 하고선 프레스기에 압착되어간다.

타키모리의 등 뒤로 고기 파테가 되어버린 형상들이 조금씩 높이를 이뤄갔다.

타키모리의 표정은, 이미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간 모양이다.


《머리카락 한 움큼만 잘라가도 될까요?》


어떤 상어인간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간 뒤로는, 다들 조금씩 뭔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뭔가.

타키모리의 일부를.


《팬이에요. 손톱을 깎아가도 될까요?》


으직.


《음... 손톱이 너무 짧으시다고요? 그렇다면 뭐, 뽑아가면 되죠!》


으직.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환자를 위해서라면?》


으직.


《손가락을 갖고 싶어요.》


으직.


《손을.》


으직.


《발. 선생님의 발이 좋아요.》


으직.


《타키모리 님의 가녀린 팔과 다리! 너무 갖고 싶었어요! 이것만 있으면 제 병도 나을 거에요!》


으직.


《어... 남은 게 아무것도 없네. 달마가 되어버리셨어요.》


으직.


《그럼 뭐, 이빨이라도 뽑아갈까요.》


으직.


《이제와서 이런 게 아프지도 않을 테고.》


으직.


《아.... 안 들리세요? 선생님?》


으직.


《...그럼 남은 건 전부 내 차지네.》


으직.


...


그렇게 초고교급 상담부원 타키모리 유미코는, 신체 말단부터 수십 조각의 기념품으로 해체되었다.

프레스기의 육편들 속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도무지 찾아보기가 어려워, 그야말로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면은 점점 어두워지며 페이드 아웃.

옛날 TV 예능 프로그램의 로고처럼, 근사한 처형 제목이 조명되며 처형이 마무리된다.


《아낌없이 주는 타키모리 양》



-



타인을 이용하기 좋아하는 그녀에게 꽤 잘 어울리는 최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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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나기 한나: "...꽤 잘 어울리는 최후, 라고 생각하셨겠네요. 카라스 씨."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악취미는 없어. 비참하게 살해당한 여자아이를 동정할 정도의 감수성은 있다고. 그쪽이야말로 이런 잔혹한 처형을 전해듣고도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거 야냐?"


카미나기 한나: "......."


"...나원 참. 기운빠지네. 질질 짜던가 화를 내던가, 반응을 좀 하라고."


"너, 인간은 맞는 거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없었다.

카미나기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난로불을 응시하다 잠들었고, '나'는 그 모습을 흘낏 곁눈질하다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개인실을 떠났다.



학급재판은 이겼다. 겨우 두 명이 죽은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법 하다. 흑막에 대한 단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결국 이게 다사다난했던 지난 하루의 결론이었다.


'나'는 방을 뛰쳐나온 그 길로 엘레베이터에 올라타 후네즈 신지를 만나러 갔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답답한 기분을 좀 해소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신지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5분 가량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더니, 안에서 아리스 윈터우즈의 소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네즈 씨는 안계시고, 당신은 나쁜 사람이니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고.

좋아. 잘 배웠군. '나'는 배움성 좋은 동화작가에게 만족하며 걸음을 돌렸다.


신지를 만나는 데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밖에서 비를 흠뻑 맞고 돌아온 신지와 라운지 층에서 마주쳤기 때문이다.


먼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용케 알아채고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신지.


그런 신지의 입에서 나온 믿을 수 없는 말들이, '나'를 돌이킬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였다.



-살인을 도와줘. 류 쨩. 해줄 수 있지?


"......."


-아아, 나도 살인과 놀이를 헷갈릴 정도의 어린 아이는 아니라고. 뭘로 보는 거야. ♤.


"......."


-응? 싫어? 하지만 이대로라면... 나 죽을 텐데. 아니,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


-저기, 내 NG 행동 말이야.


"......."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학급재판을 통과한다', 야♤. 이해가 돼?


"......!"



-...도와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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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 카미나기 한나 ???
A] <시청자 대표> 카라스야마 류이치

B] <초고교급 보디가드> 아자부 이토리
B] <초고교급 갬블러> 아야키치 슌

C] <초고교급 JK???> 쇼코라 치에
C] <초고교급 ???> 유키야마 카무이

D] <초고교급 상담부원> 타키모리 유미코 DEAD
D] <초고교급 현악부원> 토미하레 소루 DEAD

E] <시청자 대표> 레이몬 하루히 DEAD
E] <초고교급 펜싱선수> 키리누키 켄마 DEAD

F] <초고교급 실험부원> 타노 나타타
F] <초고교급 대장장이> 타치바나 츠나요시

G] <초고교급 랭킹메이커> 이나모리 쿠키
G] <초고교급 사서> 이시미네 칸

H] <초고교급 동화작가> 아리스 윈터우즈
H] <시청자 대표> 후네즈 신지

I] <시청자 대표> 시무라 카리나 DEAD
I] <초고교급 변호사> 무라츠바키 마사오미

J] <초고교급 르포기자> 시가라토 유즈
J] <초고교급 연극배우> 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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