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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2 프롤로그

무릇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다이아몬드 반지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자신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진실이며, 또 하나는 모두가 공유하고 자신만이 소외된 진실이다.



알아들었다면 카미나기 한나라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상기한 이유로, 그녀가 K 카지노 소속의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였다던가 초고교급 도박사 아야키치 슌의 절친한 친구였다던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굳이 거론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건 이미 당신도 나도 지겨울만큼 복기하고 있었던 사실이며 또 실은 이 지루한 살인의 연대기를 감상하는 데 있어 그렇게까지 중요한 정보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반드시 당신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만을 할 테다. 분명 그게 서술자 된 도리일테니까.



그러기에 밝히는 당신이 모르는 카미나기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그녀는 지독한 거짓말쟁이다.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하는 네 놈, 너는 개먹이가 딱이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 그래도 꽤 쓸모가 있군.



만약 당신이 이전의 이야기들을 통째로 건너뛰거나 졸면서 글을 읽지 않았다면, 카미나기가 살인게임에서 부여받은 NG 행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테다.

<거짓말을 한다.>

속고 속이는 학급재판에 있어서 그것은 분명 절대적인 페널티, 오른팔을 묶고 싸우는 복싱과 다름 없다.

하지만 카미나기는 자신을 옭아맨 규율을 역이용해서 이 호텔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로 스스로를 거듭냈다.

그녀가 뱉는 말에 거짓은 한 올만큼도 없다.

한 단어 한 단어가 모두 그녀라는 사람의 진심.

반투명한 천 한장만을 두른 채 나신으로 퀸 사이즈 침대에 누워있는 듯한 그 완벽한 무력함이 상대방에게 주는 안도감과 우월감은 독이 든 성배만큼이나 치명적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건 어디까지나 '등장인물로서의 카미나기 한나'일 뿐.

'서술자로서의 카미나기 한나'는 정말로 형편없으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제멋대로 폭주하는 거짓말쟁이 기관차다.

예를 들어, 만약 '서술자 카미나기'가 어떤 증거물에 의문점이 들었다는 서술을 한다면 '등장인물로서의 카미나기'는 이미 그 의문점을 해결했을 확률이 99퍼센트다.

기만하고 있는 거다, 당신을.

그녀가 새빨간 거짓말과 서술 트릭으로 묘사를 어지럽히는 이유에 대해 확답을 들은 적은 없다.

아마 그간 NG 행동에 억눌린 스트레스가 폭발해 그걸 마음껏 발산하는 중인게 아닐까... 혹은 정확히 그녀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온갖 치트키를 바르고 캠페인을 클리어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나름대로의 배려를 하는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어림짐작할 뿐이다.

카미나기의 대책 없는 서술트릭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뭐? 주인공이 프롤로그에서부터 흑막에게 살해당해? 머리에 총을 맞아?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을 흘려? 초강력 스포일러?

좆도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아주 낯짝 두껍기가 에노시마 화장발같다.

딱 잘라 말해 카미나기 한나는 두 발 뻗고 잘만 살아있다. 적어도 당신이 지금부터 앞으로 한동안 보고 듣게 될 이야기 속에선 말이다. 전문용어로 최생이다. 최종 생존.

그야 그녀는 주인공이니까, 페이크 주인공 따위가 아니라 정말 주인공의 자리에 어울리는 빛나는 사람이니까, 본격적인 이야기가 채 막을 올리기도 전에 촛불처럼 꺼져버릴 리가 없는 것이다.

그 원리는 이 작은 세계를 움직이는 일종의 원칙이자 불가항력으로 작용한다.

주위를 빛낼 사람은 세상이 조각되어질 시점부터 이미 선택되어 있으며 철저한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창조되는 거다.

잔인한 이야기겠지만, 안타깝게 빛을 보지 못한 사람 따위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자, 그렇다면 이 '나'라는 녀석은 대체 어떤 인간인가?

'나'는 이야기의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주인공이라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맞았다간 녹아버릴 지도 모르는 한여름의 아이스크림 같은 인간이다.

물찌꺼기가 모이고 모여 날카롭게 얼어붙어버린 한겨울의 고드름 같은 인간이다.

흥미진진한 일은 좋아하지만 그것을 위해 노력할 끈기는 없는 인간이다.

누군가 숨을 쥐구멍을 찾고 있을 때 그 쥐구멍 속에서 제발 새로운 입주자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지만, 어리버리한 존 왓슨 박사 정도 역할은 그래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홈즈의 시선에서 서술한 셜록 홈즈가 존재한다면 그건 분명 형편없는 소설일 것이고, 지금까지의 이 기록이 딱 그런 꼴이었을 테다.





서술자로서의 '나'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 잠시 또 만만한 카미나기를 공격해야겠다.

카미나기와 '나'는 서로의 대척점, 거기서 한 끝 더 나가 아슬아슬하게 인간의 범주에 발끝을 걸치고 선 인간들이다.

NG 행동에 얽매여 '배불러서 당신과 식사하기 곤란합니다' 수준의 거짓말도 할 수 없는 카미나기와는 달리, '나'는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악마의 혓바닥을 가진 남자다.

'나'의 허언증은 가히 습관을 넘어 병의 단계에 치달았다.

'나'가 내뱉는 말의 절반 가량은 알량한 거짓놀음이며 나머지 절반은 그 거짓놀음을 덮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물렁물렁한 오믈렛 지붕에 불과하다.

'나'의 재능도 거짓. '나'의 습관도 거짓. '나'의 감정도 거짓.

'나'라는 인간의 본모습을 본 지는 이미 기억보다도 더 오래되어버렸다.

하지만 앞서 카미나기의 예시처럼, 피노키오보다 거짓말을 사랑하는 건 등장인물로서의 '나'일 뿐.

서술자로서의 '나'는 당신에게 가장 양질의 정보와 짜릿한 진실만을 전달할 것을 선서하는 바이며, 흰토끼처럼 스포일러를 남발하거나 서술 트릭으로 당신을 낚아올리지도 않겠다.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나 아앙을 떨어서 독자를 눈살 찌푸리게 할 경우도 단연코 없을 것이다.

진실을 숨기기보단 나의 모든 지식과 추리력, 감정을 총동원해서 당신을 즐겁게 할 기쁨조가 될 것이다.



잠깐.

그래서… '나'가 대체 누구냐고?

이런, 덜떨어진 새끼를 봤나….



이 몸 말고 더 있겠어?



공포의 군주.
거짓말의 화신
탐미하는 혓바닥,

그리고 초고교급 시청자 대표.



카라스야마 류이치 님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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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
ch.2 프롤로그: "무능한 독자시점" end


다음화
ch.2: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풀 사람은 다 풀었겠지만 비밀번호는 TOP였습니다